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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7 (엡2:20-22) / 로이드존스

새벽지기1 2016. 5. 31. 07:27


성경: 엡2:20-22절

 

1.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 이제는 “그가 거하실 처소”로 묘사함으로서 점진적으로 우리의 처한 환경에 더 가까워지게 의도적으로 유도 합니다. 권속! 그 다음은 집! 이제는 건물을 말합니다. 여기서 그는 우리를 더 큰 클라이맥스로 이끌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가로 비유한 것보다 가정으로 비유한 것이 더 우선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정에 있는 식구들이 국가에 있는 동일한 시민들보다 더 밀접하게 매어져 있으면서, 또 어떤 국면에서는 여전히 그 가정의 식구들은 자유롭고 밀접한 연합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결국 개인들의 집합입니다. 그러나 건물을 생각하게 될 때에 건물에는 각 구분들끼리 더욱더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전체 건물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해하는데 좋은 열쇠가 됩니다.

가정과 별도로 생각할 때에 그 한 건물 안에 있는 벽돌들과 개개 돌들 사이의 연합은 가정과는 다릅니다.

가정의 식구들은 분리되어 있으며 별개의 개인들이지만 건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가정의 식구들은 동일하지 않으며 가정의 식구들이 되기 위해서 자기들이 지닌 특성들을 멸절시키지도 않으며 여전히 개성이 존중되고 때때로 그것은 매우 두드러지고 또 그것이 너무 두드러진 나머지 가정의 식구가 전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기보다 더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닮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정의 식구들입니다. 결국 가정의 식구들은 서로 분리 될 수 있지만 여전히 식구들이며, 서로 나누어 질 수 있지만, 그리고 서로 다툴 수도 있고, 심지어 상대방을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정을 와해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그런 일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 건물에서 큰 돌 몇 개를 빼내면 건물은 붕괴하여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합의 원리를 생각할 때에 가정 보다는 건물이 더 긴밀하고 가깝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것은 교회의 개념은 주님의 거룩한 전이라는 것이며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우리 안에 거처를 삼으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옛 성전에 주님께서 지성소에 임재 하여 계셨듯이, 지금도 주께서는 그의 백성들 사이에 있는 교회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교회의 지체로서 그 일부이기 때문에 성도들 개개인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란 말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9~17에서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등등으로 나뉘어져 있었을 때에 너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인 줄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을 합니다. 그 말은 너희가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전을 멸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뉠 수 없는 한 연합체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건축의 과정에 있는 하나의 건물로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한 직후부터 이 세상에서 행해 오셨던 일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을 이루시고 하늘로 돌아가신 이후에 행하고 계셨던 일이 하나의 건물을 세우시는 것인데, 그 건물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터 위에 지어져 가느니라.”라는 말씀이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해 줍니다. 건물이 점점 올라가고 확장되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분은 자기의 설계도와 청사진을 작성하신 영원한 건축가이십니다.

그는 집을 짓고 계신 것입니다. 모든 세대마다 어떠한 돌들을 캐내서 다듬고 건물에 붙이는 그런 작업들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대 건축물의 일부이며 이 장엄한 성전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돌들을 세상에서 빼내어 새로운 건물을 세우고 계시며 이 놀라운 건물과 이 영광스러운 전을 건설하고 계십니다. 이 건물은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자라나고 있는 유기적이며 생명이 있는 건물입니다.

 

 

베드로 전서 2:5에서는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돌이 살아 있으며 돌에 생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여기 22절에서 같은 개념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이 있는 건물이요 살아있는 집이라는 것입니다.

 

 

2. 오직 유일한 터


하나님께서는 이제 새로운 성전을 만드시고 그 성전에 거하시는데, 이 성전은 이전의 유대인의 성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구별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러한 새로운 성전이 존재하게 되어 하나님께서는 지금 거하시는 전은 그의 백성으로서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둘로 한 새사람”을 만드셨으니 이것은 새로운 교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살아 있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계속 자라나는 생명적인 것입니다.

성도 하나 하나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회가 자라나고 확산되어갑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어 연합을 이루고 하나님의 건물을 이루는데 쓰이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에 관한 분명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는 터 위에 이것을 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른 터가 없이는 참된 건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기초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연합에 대한 오직 유일한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입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건설됩니다.

사도는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람들로서 부활의 증인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특별히 부름 받아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서 복음의 전도자로 보냄을 받은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적들을 행하고 교회들을 설립할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제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오실 것을 예언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예언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기초를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중요한 골격은 그들 위에 세워진 것으로, 그것은 이 큰 건물 안에 있는 주춧돌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먼저 놓여졌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터 위에 다른 터를 닦아 둔 자가 없나니”라는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다른 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3. 영적 화해


교회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으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또한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짓고 계신 이 큰 성전의 건설 과정에 세워지고 있는 여러 벽들의 지체들입니다.

 

 

하나님이 짓고 계신 이 위대한 성전은 주 안에 있는 거룩한 전입니다.

하나님의 이 신기한 집을 짓는 데 있어서 우리가 어떤 위치와 부분을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에베소 사람들이 그 거룩한 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즐거워합니다. 그들이 들어오기 전에 그 일은 시작이 되었고 그들이 그 일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들로서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은 이 하나님의 위대한 전에 있어서 개개 부분들이 되는 우리는 기초들과 상호 연락이 되어야 하며 참되고 바르게 그 기초와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집을 짓는 재료로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어지는데, 짚이나 나무나 풀로 집을 짓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터가 보배롭고 또한 모퉁이 돌도 그러하기 때문에 금이나 은이나 보배로운 것들밖에는 적당치 않아, 짚이나 나무나 풀로 집을 짓는 것은 무가치하여 공력을 밝히는 날이 오게 되면 불로서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불이 와서 나무나 짚이나 풀을 순식간에 태워 버릴 것이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집을 지은 사람은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 터 위에 어떻게 집을 지을지에 대하여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집을 짓는 사람의 일은 단순히 벽을 빨리 세우는 것이 아니고 벽에 들어갈 모든 것이 그 터와 서로 잘 상합이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터 위에 진정으로 확고히 세워진 것들을 통해서 교회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것을 알고 또한 전적으로 무능하며 무력한 존재임을 알며 오로지 자기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존해야 하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만이 그러한 데에 참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속죄의 은혜에만 의지하는 사람들이며, 성령의 능력에만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집을 짓기 위하여 특별하게 선별하여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 있는 돌들로 각자가 다 다른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며 결합되어 큰 건물의 담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돌들은 건축가에 의해서 그 쓰임새에 꼭 맞도록 다듬어 질 것입니다.

 

 

4. 교회의 성장


이 본문 말씀에서 교회가 일종의 건물이요 큰 전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에 계시고 여전히 더 크고 더 충만한 방식으로 거하시려고 하십니다.

 

 

이 건물을 짓는 데 있어서 돌들처럼 우리는 기초와 모두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리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함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완성 될 때 하나님께서 거하시게 될 그 “거처”를 위해서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제 우리는 이러한 돌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그 건물에 놓여지게 되는가 하는 큰 문제에 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에베소 사람들은 이 건물로 들어왔고 지금 이 건축의 부분들이다.

너희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 주 안에서 지어져 가고 있는 이 큰 전의 부분들이다.

 

 

그럼 언제 그런 다듬는 준비가 일어나는가가 관건이 될 것인데, 일차적으로 이 준비는 우리가 교회 안에 있기 전부터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준비를 받고 있지 않았으면 결코 이 건축의 부분들이 될 수가 없고 이 벽의 돌들일 수 없습니다.

 

 

열왕기상 6:7에서 “이 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기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그것은 솔로몬의 성전을 짓는 기사의 일부분으로 매우 중요한 역사적인 자료입니다.

 

 

성전을 짓는 모든 과정과 재료들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짓는 것에 대해서도 내역을 세세하게 일러 주셨습니다.

 

 

“이 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그 진술은 교회의 본질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에 대해 큰 빛을 던져 주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 돌들을 준비하는 과정은 은밀히 진행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지체들이 될 수 있기 전에 성령에 의해서 능력 있는 준비의 사역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행해집니다.

이것은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일이며, 세상은 그것에 관해서 알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이 그 돌들이 준비되는 것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듯이 세상은 이것에 관하여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의 지체가 될 때에는 반드시 중생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된 돌들로 건물을 짓는 동안에는 어떠한 시끄러운 소리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생명에 관계되는 진리에 관해서 어떠한 논쟁이나 불일치도 있어서는 안 되며,

방망이나 망치 소리나 철 연장 소리가 나서도 안 됩니다.

인간의 어떠한 지위와 조건에 관해서도 논쟁의 소리나 다툼의 소리가 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