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엡2:18절
1. 아버지께 나아감
이 논증은 11절에서 시작되어 가장 높은 정상에 도달해 있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진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한 단계, 한 단계 진보하여 가장 높은 정상에 도달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복 되신 성 삼위일체를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한 성령으로 성부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위대하신 성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식하고 드리는 예배는 경외로움과 경배로 그리고 외경스러운 느낌과 영광의 느낌으로 찬양과 참된 찬미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드릴 때마다, 또는 우리가 예배드리려 함께 모일 때마다 우리는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영광을 감지하지 못하며 엄위와 위대하심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우리의 영을 그렇게 준비시켜야 하며, 묵상해야 하고 이 문제를 좋아해야 하며 성경을 탐구해야 합니다.
영광과 거룩과 전능하신 가운데 계신 영원하신 성 삼위 하나님께서 “나”라는 개인에게 관심을 두고 계시고 또한 역사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일 텐데, 그보다 무한하신 권세와 영광 가운데 계신 분, 더군다나 성삼위의 전체로서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이보다 더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감당할 수 없는 그 사랑에 영광과 찬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 영광과 놀라운 특권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감격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는다는 사실에서 “나아감”이란 말은 너무나 중요한 말로서 “접근하다”라는 말로 번역될 수도 있지만 “소개됨”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그러면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소개함을 받게 하려 함이라.”가 될 것인데, 그것은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호의를 베푸신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중요한 점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이것에 대한 길을 예비하시고 준비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효력이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것을 산출하여 우리를 아버지께 소개하시고, 손을 붙잡아 이끌고 그의 존전으로 데리고 나아가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에 대하여 말할 때에 그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이런 저런 것들을 해결해 주는 것에 머무는데,
그러나 구원의 장엄한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존전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 땅의 삶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존전에 데려다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와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나아감”을 얻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존전에 담대히 나아가 그분과 교제를 나눌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2.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나아감”을 얻게 된 우리들이 이제 어떻게 나아감을 얻느냐 하는 것인데, 구원의 목적과 목표가 그러하다면 큰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우리는 여기서 기도라고 하는 위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기도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주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어 가까이 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① 우리가 하나님을 아느냐?
②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느냐?
③ 우리의 기도가 진실 한가?
④ 우리는 기도를 할 때 자유롭게 하고 있는가?
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확신을 가지고 하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볼 때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또 어떤 위기를 만났을 때,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기진해 있을 때 기도가 어떠한 것인가를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또 그들에게 가서 상의를 하며 성경을 읽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수밖에 다른 것이 없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물론 그러한 기도들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바로 이 구절이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었다.”
이 말씀은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의 나아감이 효력 적이고 효과가 있다고 믿게 된다면
우리는 기도를 할 때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믿고 문제 거리를 맡기고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과 의식으로 행복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해결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가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보다 더 친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는 조건이 주어졌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의 의를 받았고 그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다시 태어났고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고 그의 완벽한 사역을 의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해 놓으신 일에 감사하며,
또한 그를 보내사 그 일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전적으로 주님에게 달려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아뢰고,
그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성령으로 기도함
어느 의미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어려움도 많은 어려움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어려움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보아왔고 그들의 말하는 소리를 들어왔으며,
그들과 교제하고 서로 친교를 나눌 때에 얼굴을 마주대하고 대화를 나누며
어떤 때는 슬픔으로 또 어떤 때는 기쁨으로 교제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시며, 더군다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어떤 때에는 우리에게 들려오는 음성이나, 어떤 느낌,
아니면 황홀지경에 빠지거나 전신으로 느껴지는 격렬한 감동으로 주어질 때도 있는 반면에
사단에 의해서 사단이 보내는 암시들과 환상들도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단순히 어떤 심리적인 경로를 겪고 나가는 것 밖에 되지 않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을 설득하고 기만하고
사실상 우리 자신에게 우리 자신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처럼 흔하게 불평하는 비 실제성의 보편적인 의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집중성의 문제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나, 책을 읽고 있다면
그 집중한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며, 그런 문제가 전혀 야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에 우리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고
우리의 생각들이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리려는 의도로 무릎을 꿇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쉽고 또 어제 일어났던 일, 또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무가치함의 느낌이 드는데, 아직도 우리의 죄악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접근해 나갈 권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며, 또 다시 의심이 들어오고 또한 의심들이 마음속에 침투하여 여러 가지 의문과 갈등들이 일어나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일들과 친숙해 있고 이러한 일들은 기도가 인간의 영혼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 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마음과 생각을 모으고 진정으로 집중시켜서 우리의 기도로 하여금 살아있고 진실하고 생명감이 넘치는 행위가 되게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모든 지역의 세력들이 우리에게 방해 공작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의 노력을 흩어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실로 두려워해야 할 일은 기도가 너무 안일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무엇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영혼의 큰 원수에 특별한 표적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이유들로 볼 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가를 배우는 것은 매우 필요하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 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기도를 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인식하지 않고 여러 가지 간구들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먼저 멈춰 서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묵상하고 스스로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고 있는 영혼입니다.
그것은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며 그저 급하게 돌진해 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한 성령”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성령이 없이는 진정으로 기도할 수 없으며
참된 기도는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기도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성령의 사역과 활동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이 없이는 기도가 기계적이고 생명이 없고 어려운 것이고 또 기도라는 것이 고역이 되지만
성령과 함께 하게 되면 모든 것은 변하여 기도가 자유롭고 영광스럽고 영원히 누릴 최고의 누림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께서 기도의 문제에 있어서 정확히 어떠한 일을 행하시는지에 대하여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어째서 내가 기도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언제나 기도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기도하고 싶어지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그 답은 내 속에 신령한 마음을 창조하는 이가 성령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소생시키시고, 살리시고, 다시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움직이시고, 자극시키시고, 우리 육신적인 마음을 영적으로 작동시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영역을 의식하게 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안에 성령께서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상기하여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하셔서 사람을 기도로 인도하시는데,
사람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더 좋은 것은 없으며,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특별한 역사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그저 단순히 구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진해 나가는 것과 진정으로 교제와 진정으로 하나님과 누리고 있는 차이에 대해서 스스로 잘 아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보게 하시고, 부족함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경건한 슬픔과 참된 회개를 창조하십니다.
그것은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촉진제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도록 준비하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령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특별한 은사와 정신과 혼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수십억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의 구별되고 독특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인격적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고 있는 것이며, 그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알고 싶어 하는 소원을 느끼게 되고 그와 접촉하고 싶어지는데, 그 일을 성령께서 행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아직도 무언가 확실하게 와 닿지 않지만, 하나님이 자기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때는 매우 중요한 단계에 접어든 상태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굶주려 있으며 자기들의 영혼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성령께서는 모세에게 그러셨듯이, 또한 여호수아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영광과 엄위 속에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그것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을 이해하도록 하시며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환난과 난제들에 의해서 둘러 싸여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또한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 있더라도 약속들에 대한 소망을 주셔서 기쁨과 행복의 감정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인데,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적으로 무력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몰라 절망적일 때, 우리가 신음하고 있는 처지에 있게 될 때 또한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을 때마저도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말로 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시면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요구가 없이도 성령께서 그렇게 행하신다면 우리가 그에게 요구하고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그가 확실히 우리의 도움에 응하실 것이라는 것이 얼마나 확실합니까!
성령으로 기도를 시작하면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 아니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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