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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2 (엡2:8-10) / 로이드존스

새벽지기1 2016. 5. 14. 08:31


성경: 엡2:8-10절


1.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1~3절까지는 죄의 결과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행동과 행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모든 태도로도 그러한데, 사도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존재로서 죄와 허물로 죽은 육체의 원하는 것들과 마음의 원하는 것들을 채우며, 욕심껏 살아가는 존재였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그보다 더 악한 상태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4~7절에서는 앞 절의 상태에 있는 사람의 조건은 절대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직 형벌 밖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조건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값없이 주시되 풍성히 부어 주신 사실을 증거함으로서 우리의 구원에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자신의 의지나 어떤 구원의 조건에 부합하는 합당한 것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전에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기독교회를 혐오하며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살기 등등 하였던 다소 사람 사울이었던 때를 뒤돌아보며, 옛날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때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자신의 옛 모습을 살펴보면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대하여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주어졌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또 어떤 구실로도 그것을 자랑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경건을 자랑하고, 자신의 출신을 자랑하고, 자신의 선한 삶을 자랑하며, 선한 행실을 자랑합니다. 바리새인이 “내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며”(눅 18:9)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그런 실수들을 합니다. 그것이 무슨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그것들을 자랑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가장 교활한 방식으로 시험하는데, 그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결코 행위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입니다. 그 외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구원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우리가 한 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2. 그의 만드신 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이고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어떤 사람도 자랑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다른 생각은 불가능합니다. 본문의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라는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바울의 정의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들로서 참되게 행동하게 되는 것은 이 말씀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착해지는 것이나, 착한 일을 하는 것쯤으로만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게 되라고 하지도 않고 그것만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인이 자기들 각자에게 주어질 지위와 특권을 깨닫고, 그 놀라운 장래의 일에 대하여 즐거워하라고 권면을 하며, 자기들이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살라고 권고 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고 자신의 품격에 맞는 생활을 하게 됨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착한 행실과 같은 것들이지 결코 그것을 목표로 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만드신바”라는 말씀에서 우리들 자신에 관해서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행하는 어떤 일의 결과나 그것에 대하여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실 하나님의 솜씨로 만드신 작품입니다. 그 사실이 개인적으로 나의 가슴을 벅차게 합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를 위하여 행동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범죄하였을 때 그를 찾아 가셔서, 그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분도, 왕들을 지으신 분도, 선지자들을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율법을 주신 분도, 성전을 짓는 법을 가르쳐 주신 분도, 때가 찼을 때에 아들을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위대한 작가이시며, 위대한 공예가시며, 위대한 예술가 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창조자시요, 위대한 토기장이시요, 위대한 공예가시요, 위대한 조각가이시며, 위대한 조물주이십니다. 그런데 그 위대하신 분이 나의 생명 속에 전에 없던 것을 있게 하셨는데 그것이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동등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치셨습니다.”(고후 4:6)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실 일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고 전달하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의 인격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를 이루어 가시는데,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생산 공장에 가서 견학해 볼 때에 깨닫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점에 가면 팔기 위해서 내다 놓은 완성된 아름다운 작품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만드는 처음 과정부터 놀라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성된 작품인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생산하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정확하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계획하시고 아들을 보내셔서 그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런 다음에 성령을 보내셔서 그것을 적용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일하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만드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일을 성령님을 통하여 이루어가십니다.

 

우리가 그의 말씀에 따라 순복하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징계가 주어지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성품을 바꾸시고 우리의 모든 잘못된 것들을 고쳐 나가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징계를 주거나 환경을 통한 고통과 환난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 성도들이 그들 자신의 죄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을 판단해 보고, 시험해 보고, 바르게 하는 일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병들고, 약하여 있다고 매우 노골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질병을 통해서 그들을 다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또 그는 어떤 자들은 자는 자들도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성도들을 다룸에 있어서 죽음까지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물이 없는 완전한 작품을 만드시기 위해서 여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하시고 사랑하시고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 속에서 일하시기 시작하시기 전에 이미 우리가 살아 나가야 할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되고 싶은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계속해서 죄를 제거하고 싶고, 적극적으로 거룩해 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욱더 그리스도처럼 되고 싶어 하느냐는 것으로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