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38)

새벽지기1 2016. 5. 21. 22:59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려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 사이에는 윤리적 긴장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받지 못한 백성들에게 폭력을 행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폭력은 이스라엘의 사명이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된다. 바벨론 포로 때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는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종이 되는 민족으로 분명하게 다시 표현되고 있다. 그 종이 이 세상을 대신하여 폭력을 행하는 사람의 손에 고통 받는 것으로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가 이 땅 모든 사람에게 복을 매개하는 구약의 언약을 성취하는 방식은 칼이 아니라 고난 받는 종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행하는 일의 가장 큰 특징은 비폭력적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열심당원(Zealot)이 택한 것과 같은 폭력을 쓰지 않았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 스가랴서 9장 9절이 예언한 것과 같이, 군마가 아니라 염소 새끼를 타고 갔다. 이것은 그가 이 땅 모든 민족에게 평화를 갖게 하는 겸손한 왕이라는 것을 나타내준다.


그가 십자가에 죽은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웃에게 폭력을 행하는 문제를 푸는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것 대신에 십자가에서 자신에게 행하는 폭력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것을 통해서 그는 폭력의 세계에서 참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죄를 지은 인류를 쓸어버리기보다 용서하여 다시 그의 나라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결정이다. 그것은 원수들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다. 오스카 쿨만이 정확하게 보았듯이, [Oscar Cullmann, The Christology of New Testament (Philadelphia: Westminster, 1963), 51-82], 그리스도는 구약 이사야 53장에 나타나는 야웨 하나님의 고난 받는 종이었다. 그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자신을 인류의 구세주로 인정하자마자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였다(마가복음 8:27-33).


사도 바울은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로마서 5:8, 10).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사람이 폭력을 버려야 하는 기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이 땅에서 비폭력의 방식으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르쳤다[Ronald J. Sider, Christ and Violence (Scottdale: Herald Press, 1979), 24].


그리스도가 산에서 가르치신 이른바 산상수훈은 이웃의 존재, 자유, 존엄 및 행복을 빼앗는 폭력을 버리라고 요구한다. 초기 2세기 이상 동안 다른 나라에서 온 정복자들로부터 너무 많은 압박을 받아왔기 때문에 폭력의 방식으로 반역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유례없는 명령을 하였다, “원수를 사랑하라.” 신약신학자 마틴 헹겔에 따르면[Martin Hengel, Victory over Violence (London: SPCK, 1975), 76], 그리스도가 이 명령을 한 것은 열심당원의 가르침 및 실행과 의식적으로 대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가 그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이미 실현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웃 사랑이 이스라엘 백성이나 새롭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 확대된다.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지 그리스도인의 이웃이고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이 대상에는 원수까지도 포함된다.    <계속>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