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현 수 박사
평택대학교 부총장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주 되심의 영성
<하나님 형상>
그러면 하나님 형상이 회복된 사람은 세계의 평화를 실현하는데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가? 기독교의 역사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존재 양식은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비판적 참여의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건설적 참여의 형태다. 앞의 것은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에 반대하는데 것인데 반하여, 뒤의 것은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role model이 되는 것이다. 앞의 것에 속한 형태는 은둔적인 교회와 해방적 교회다. 은둔적 교회는 핍박과 고난을 받아가면서도 폭력적 국가 권력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다. 해방적 교회는 폭력으로 압박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국가 권력에 맞서거나 변혁하려고 한다. 건설적 참여의 형태는 성례전적 교회와 제도적 교회를 들 수 있다. 앞의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교제하는 공동체 삶에 초점을 두고, 뒤의 것은 바른 공동체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네 가지 형태는 교회가 세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서로 보완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 형상이 회복된 사람들의 공동체는 평화로운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폭력과 지배 및 규정들을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방안들을 마련해 가야 한다. 가령, 강대국들을 견제할 만한 힘을 가진 국제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압력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거나 빨리 끝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한 걸음 나아가,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국제 사회에서는 평화 정착을 위한 세계 여론의 형성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나님 형상이 회복된 사람과 그러한 사람들의 공동체는 세계의 평화를 실현하는 일에 따르는 고난을 믿음의 차원에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일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실현되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실현은 믿음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실현을 위해서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주로서의 다스림에 대한 믿음의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일 때문에 받는 고난은 오늘날 하나님 형상이 회복된 사람과 공동체가 기쁘게 짊어져야 할 십자가다.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갖는 권리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많은 갈등과 대립을 겪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형태의 차별 의식이 깔려 있다. 가령, 남녀, 연령, 학력, 빈부, 문화, 인종, 민족, 문명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차별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으로서 갖는 기본 권리 곧 인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인권의 근거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형상은 본래 고결한 것이었으나(창 1: 31).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로 말미암아 상당한 정도로 손상을 입었다. 오늘날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악한 성품은 이러한 상태를 잘 드러내준다.
사람은 죄로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하나님은 죄로 손상된 하나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킨다. 그것은 성령이 복음 사역을 통해 현재의 삶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고후 3:18), 종말에 완전히 실현된다. 따라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가 된다.
인권의 구체적 모습은 먼저 신앙의 자유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알고 섬기며 그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권리를 갖는다. 또한 사람은 이 땅에서 하나님 중심의 문화를 이루어 가는 책임과 권리를 갖는다. 이러한 권리는 사람이 인격적 존재라는 것을 전제한다.
사람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추구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자유를 갖는다.<계속>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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