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이고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이다”(잠언 14:31).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언 19:17).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자신과 동일시하였다(마 25:35-40; 45).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른바 자유 시장주의 체제아래서 가장 희생되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그들은 결국 거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착취를 당하기 쉽다. 그리고 성경은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재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들어서 인류 구원을 위한 중요한 과업을 이루어가게 한다.
더구나 성경은 가난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가 아니면 공동체에 있는가를 따지기보다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한 사람이 경제적 궁핍에 이르게 된 것이 전적으로 그 개인의 책임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경제 구조와 제도가 복잡하고 세계시장화 된 상황에서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다. 개인의 능력이나 일의 자세라고 하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것들이 개인의 경제적 가난의 큰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 사람의 가난이 사회 구조의 모순과 미비의 희생일 수 있다. 따라서 사회는 이러한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복지 정책이다.
폭력은 다른 사람이 갖는 자유를 해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은 흔히 도덕적이지 못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그것은 목표하는 것을 이루려고 남의 의지를 압박하여 복종하도록 하려고 비도덕적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룬 문명의 역사는 아주 다양하고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 폭력이 일어나게 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폭력은 죄에 뿌리를 두고 있다(창 2:17; 3:6).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따 먹은 인류 최초의 범죄는 사람 사이의 폭력이 일어나게 하였다. 폭력의 형태는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것, 형제를 죽이는 것(창 4:8), 복수 살인(창 4:23-24) 등이 포함된다. 사람 사이의 폭력이 점점 늘어나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폭력이 만연하게 됨으로써 이 땅은 부패하고 황폐하게 되었다(창 6:11). 그 결과 홍수가 일어나게 되었다. 홍수는 하나님이 이 땅에 폭력을 없애고 새로운 시작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였다.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막는 법을 만들기까지 하였다(창 9:6). 그러나 홍수는 사람이 가진 근본악을 바꾸지 못하였다(창 6:5-6과 8:21을 비교).
인류가 폭력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람을 고향 땅에서 불러낸다. 그것은 그의 후손들이 의와 정의(창 18:19)를 보여줄 큰 민족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민족을 통해 세계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한다(창 12:3; 18:18; 22:18; 26:4; 28:14). 폭력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브람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인류를 사로잡고 있는 폭력을 뒤바꾸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명은 고집 센 민족주의와 모순을 이루는 듯이 보인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은 새롭게 형성된 민족이 그 공동체 안에서 정의를 행하도록 요구하지만,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여행자나 이방인들을 제외한 다른 민족에게 정의를 행하라는 분명한 명령이 없다(출 22:21; 23:9; 레 19:33-34; 신 10:17-19; 24:17-22). 실제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나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신 7:1-6). <계속>
편집부기자 |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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