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33)

새벽지기1 2016. 5. 15. 17:55


이 교제의 특징은 하나님의 주되심에 대한 복종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왕권이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바르게 반응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되심에 대한 순종의 요구는 세상이 하나님과 하나 되게 이끄는 열정과 같이 간다.   


교회의 예언적 메지시는 또한 정의를 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김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둘은 그 어느 하나도 홀로 설 수 없다. 하나님의 주되심에 대한 교회의 순종은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까지 확대된다. 이 주되심은 이 땅의 모든 것을 구속하는 것을 목표하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주되심에 순종하는 삶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요한복음이 증언하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보이는 교회가 되고 세상에 대해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구속적 질서아래에 놓이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인간 사회에서 성실과 정의를 증대시키는 것이 요구된다. 교회는 세상과 맞서되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교회가 구속적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 매개하는 데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 된다면, 교회는 본질적으로 인류의 하나됨과 연결된다. 교회가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 나라의 특징인 하나됨을 실천하고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다스림은 그것에 복종해야 하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한다. 이 교제에서는 개인과 사회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 관계를 갖는다.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매개되고 구체화될 수 있다면,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관심사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사람간의 관계 곧 사회의 하나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현재에 이미 하나 됨을 경험한다. 이 하나됨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사건에서 이미 성취되었고 그것이 미래에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것을 바라본다. 교회 자체가 하나를 이룸으로써 인류가 하나가 되는 본보기를 사회에 보여줄 때 하나가 되게 하는 사회적 책임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교회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서 사랑과 정의 가운데 하나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구체화해가야 한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마지막에 있을 구원의 약속과 관련하여 평화를 말할 때 그 평화는 국가사이의 평화도 포함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원수는 개인적인 적뿐만 아니라 국가적 및 종교적 적들까지도 제외되지 않았다. 평화가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실현에 관계된다면, 그것은 정치적 차원도 예외가 아니다. 에베소 2:14-22에 따르면, 하나님의 평화는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방인을 배제시켰던 유대교의 진리를 뒤엎었다. 그의 죽음은 율법의 마침이 됨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의 평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평화가 하나님의 평화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의 평화는 서로 이해가 대립되는 나라들 사이에 무기를 쓰지 않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평화는, 비록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는 단편적인 것이나, 인간 존재의 안녕과 온전함에 관계한다.


세계의 평화는 소극적으로는 전쟁이나 집단적 폭력이 없는 상태다. 노르웨이의 평화 연구가 갈퉁에 따르면, 세계의 평화는 “규모가 상당히 큰 그룹의 사람들 특히 국가들의 체계 안에서 폭력을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행사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될 수 있다.<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