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31)

새벽지기1 2016. 5. 12. 21:37


그때까지 그것은 오직 상징적인 방식으로만 있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갈 사회적이고 정치적 삶의 근본 원리를 상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 된다. 이 상징적 기능이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선적 이유다.


이와는 달리 종교개혁가 요한 깔뱅은 하나님 나라를 역사상의 교회와 일치시킨다(기독교강요IV.ii.4).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는 교회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교회의 수적인 증가를 말한다(기독교강요, III.xx.42).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 나라로서의 보이는 교회는 참된 교회이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깔뱅에게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이고 하나님은 그의 말씀만으로 다스리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그의 왕권(즉 가장 거룩한 그의 말씀)을 떠나서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기독교강요, IV.ii.4).


깔뱅의 이런 주장을 판넨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논박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것의 영광의 한 부분을 확신할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나타났지만, 아직까지 교회에 의해 획득되지 않았다. 그것이 교회에 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표징의 형태만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조직된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구별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 없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세속적인 세상에서 교회 밖에서 그리고 흔히 교회를 대적하여 스스로를 드러내야 한다.


판넨베르크는 교회가 인류의 미래 종국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그리스도’라는 칭호와 관련시킨다. 그리스도란 호칭은 그리스도가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주되심을 성취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주되심은 인류의 역사 끝에 하나님 나라에서 실현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와 피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와 일치시키는 데 반하여, 판벤베르크는 승귀된 그리스도가 역사의 끝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높임 받은 그리스도는 개인의 구주만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이를 종국의 선취이다. 따라서 판넨베르크는 교회의 기능이 하나님 나라에서 갖게 될 미래의 교제를 예기하고 그것에 헌신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개념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개인적 차원 안에서만 보고 그의 보편적 성격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넨베르크는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로서 보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한 교회 개념은 개인적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더욱 지구촌 형태의 공동체나 정치적 삶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판벤베르크에 따르면,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혹은 새로운 이스라엘로 선택된 것은 모든 인류의 미래를 예기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핵심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택이 그 본질적 성격에서 개인적 차원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스라엘에서 사회 질서와 민족의 통일성은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의 선택 행위와 일치하면서 발전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것은 선택과 민족 및 역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민족들 사이에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증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정의를 제도화하여 창조와 인류의 종국을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또한 인류 역사의 전 과정과 관련이 있다. 로마서에 보면,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과 역사적 과정은 함께 묶여 있다.<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