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못 말려
지난 금요일에 KTX 천안아산역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어떤 아줌마가 기차에 올라타 객실로 들어서면서 목청을 다해 “은경아빠”하고 크게 소리치는 바람에 객실 안에 있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아줌마는 찾는 사람이 객실 안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스르르 닫히는 열차 문을 손으로 밀고는 황급히 열차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하자 이 아줌마는 다시 타려고 하는지 기차를 세우라고 막 두 손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법석을 떨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약간 미친 여자 같았다. 그런데 그 정신 나간 아줌마가 바로 내 아내였다.
아내와 함께 부산에 말씀을 전하러 가는데 KTX 역까지 가는 길이 도로 공사로 막혀 기차를 놓칠 지경에 처했다. 간신히 정체구간을 벗어나자 운전대를 잡은 아내는 빨간 신호를 두 번이나 무시하고 도로의 무법자처럼 폭주했다. 역에 닿으니 열차시간 일분 전이었다. 그런데 주차할 곳마저 없어 차를 멀리 세우고 아내는 뛰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 뒤를 따라 가방 두 개를 들고 뛰는데 얼마 못가서 다리가 풀려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아내는 계속 앞서 달려가 내 눈에서 아득히 멀어졌다.
아내가 차 안에서 기차가 연착되게 기도하라고 했는데 정말 기차가 몇 분 연착하는 바람에 내가 헐떡거리고 플랫 홈에 올라서자 기차가 들어왔다. 우리 좌석은 7호차인데 나는 착각하여 2호차에 올라탔다. 아무리 찾아도 아내가 없었다. 아내는 7호차에 타서 평소 나를 부르는 대로 “은경아빠”를 부르며 소란을 떤 것이다. 그 객실에 내가 없는 것을 보고는 내가 기차를 안 탄 줄 알고 황급하게 내렸는데 플랫 홈에도 내가 보이지 않자 다시 열차에 오르려고 그 난리를 피운 것이다.
결국 아내는 다음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왔다. 다급하게 차를 세워둔 곳이 주차금지 구역이니 차를 빨리 옮기라고 연락이 왔다. 다행히 아내가 기차에서 내리는 바람에 차가 토잉당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 셈이다. 이번 일로 아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아내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평상시에는 순둥이인 아내가 다급한 상황에 처하니 못 말리는 아줌마의 괴력을 가진 헐크처럼 돌변하는 것을 보았다. 앞으로 몸조심해야겠다.
<박영돈 목사>
'좋은 말씀 > 박영돈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엑소시스트(Exorcist) (0) | 2016.04.20 |
---|---|
작은 교회 목사의 애환 (0) | 2016.04.19 |
칭의론을 제대로 알고 비판해주면 좋겠다 (0) | 2016.04.15 |
내세의 소망이라는 것이 있어? (0) | 2016.04.11 |
짬뽕영성이 유행하는 시대 (0) | 2016.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