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 (롬 1:1)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아이덴티파이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즉 둘로스라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자의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바울만이 혹은 사도들만이 혹은 풀타임 사역자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 즉 주의 종입니다. 즉 '만인주의종' 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나 선교사만 주의 종이고, 일반 성도들은 목회자와 선교사들의 종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철저한 오해입니다. 목회자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의 종입니다.
둘로스라는 말의 본래 뜻은 주인의 절대 소유권에 종속된 자입니다. 즉 자신의 계획이나 뜻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노예는 오로지 자신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며, 그 주인의 영광과 영예를 위해서 봉사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역시도 우리 자신의 계획이나 뜻이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뜻과 계획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하며, 주님의 뜻과 계획이 분명하다면 그것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며, 오직 주인의 영광과 영예를 위해서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꿈과 비전을 말할 때에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과 계획과 무관한 혹은 상반되는 뜻과 계획을 우리의 꿈이라고 비전이라고 미화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죄악된 삶을 살 수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둘로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로마사회에서 둘로스는 그야말로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었습니다. 무력과 강압을 통해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사랑과 자발적인 봉사의 관계가 아니라 억압과 억지의 복종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함으로써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왔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뜨거운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의 주인노릇 해주시며, 이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자발적인 순종으로 우리는 주님의 종노릇을 하는 질서가 도래한 것입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완전히 뒤집는 새로운 질서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함께 온 것입니다.
동시에 인간이 다른 인간의 주인노릇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 5:13)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함으로 새롭게 세워진 교회공동체는 어느 인간이 다른 인간의 주인노릇을 하는 세상공동체를 뒤집어 업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서로에 대하여 노예노릇하는 관계, 억압이나 착취때문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복종하며 서로를 섬기는 관계가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질서라는 것입니다.
1.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의 종으로 살았습니까?
2. 혹시나 우리 자신의 뜻과 계획을 예수님의 뜻과 계획보다 앞세운 것은 아닙니까?
3. 오늘도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종노릇 했습니까? 아니면 주인노릇 하면서 교만과 위선의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까>
4. 오늘 우리가 사랑으로 종노릇 해주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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