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우리가 불러야 할 영원한 노래

새벽지기1 2015. 6. 4. 08:20

 

샬롬! 찬미예수

 

이 세상에서 불러지고 있는 노래가 얼마나 많은가?

라디오를 틀어도 노래, TV를 켜도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방도 많고, 해마다 관광지를 향해 달리는 묻지 마 관광버스는 몸살을 앓는다.

중년의 남녀가 어울려 춤과 노래로 관광버스는 이동식 무대가 된다.

 

축하의 자리에도 노래가 있고, 슬픔의 자리에도 노래가 있다.

전쟁에서도 노래가 쓰이고 주검의 자리에도 노래가 있다.

혼자 있어도 노래와 떨어져 살 수 없다.

노래 속에 생명이 있고 노래 속에 죽음도 있다.

노래를 통해 가슴속 깊은 슬픔을 꺼내 놓기도 하고, 노래를 통해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노래는 언어요, 노래는 고백이다.

 

노래는 누구나의 것이다.

부자가 아니어도 노래는 소유할 수 있고, 배우지 못했어도 노래는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

노래는 무엇보다 시대를 반영하고 사상을 반영한다.

어떤 노래가 유행하느냐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밝고 어두움을 알 수 있고, 그 시대의 국민정신을 읽을 수 있다.

노래에도 사상적 이데올로기가 있고 개인이 있고 민족이 있다.

의식 있는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전파한다.

우리나라의 군사독재 시대에만 하더라도 의식있는 사람들의 새로운 날에 대한 고취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노래들이 많다.

대중가요 가수들도, 시인들도, 저자 거리의 어느 초라한 음식점과 선술집의 늙으렁한 할메의 정신에서도 그 시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떄는 모두가 함께 아픔을 겪고 대중들과 소외당하는 수많은 민초들의 마음에도 함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는 아이돌 스타가 되는 것이라 한다.

연예인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연예인 양성소는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TV에서 방영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우후죽순 많이 생겼다.

 

얼마 전 ‘K팝스타 시즌 2’에서 발굴해 낸 10대 남매 악동뮤지션이라 불리는 이찬혁 군과 이수현 양이 있다.

이 남매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5년 동안 홈스쿨링(home schooling)을 한 것이 교육의 전부라고 한다.

프로그램 출현 당시 그들은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작사, 작곡한 멋진 곡들을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통통 튀는 10대 감성의 가사와 형식에 격이 없던 노래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 당시 각종 음악차트 1위를 휩쓸었고, 마침내 우승을 했다.

 

악동뮤지션 남매의 부모는 현재 몽골에서 예배와 찬양 사역으로 섬기고 있는 선교사들이다.

이 선교사 부부는 이렇게 고백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 예배와 성경 읽기, 묵상을 생활화했고 아이들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가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선교사 자녀학교인 MK스쿨을 다녔고

교회에서 함께 어울리며 찬양으로 섬겼을 뿐입니다. 그런데 악보도 제대로 그릴 줄 모르던 첫째 아이가 일 년 만에 50여 곡을 작사. 작곡했습니다.

오빠가 흥얼거리면 여동생이 멜로디로 노래를 완성했는데 5분에서 45분이면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세상이 가르쳐주는 욕망의 노래, 개인의 상처만 보듬는 노래인가?

함께 잘사는 세상, 모든 사람이 어깨를 펴고 사는 세상을 열기 위해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평화의 노래, 사랑의 노래인가?

주님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라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궁극적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후손들에게 들려줄 노래는 무엇인가?

승자 독식 사회에서 돈과 출세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다른 삶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의 경우는 다르지 않은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남과 겨뤄 이기는 것도, 남보다 많이 누리고 사는 것도 아니라 누군가의 이웃이 되는 것이다.

고통 받는 이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가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짐을 지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돈과 출세가 지상목표인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부르는 노래가 운명이 되는 법이다.

작가 서해성은 역사를 담고 있는 노래를 가리 켜 "노래 부르는 이들을 가슴 깊은 전사로 빚어내는 용광로 같은 무형의 조국"이라 말한다.

"화살이나 총알과 달리 불발탄이 없는 것이 노래" 라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에는 개인은 있지만 공동체는 없다.

아픔과 죄에 대한 고백은 있지만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북돋는 노래는 만나기 어렵다.

나라가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심을 북돋는 노래가 부쩍 많아진다.

노래는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시대정신을 이끌기도 해야 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찬양들이 나온다.

감사와 영광의 노래, 참회와 회복의 노래, 환희의 노래, 겸손한 사람의 찬양이 녹아있다.

'찬송'이라는 이 한마디에는 성경전체의 역사가 농축되어 있고 성경의 온 정신이 담겨 있다.

그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영원한 왕에 대한 찬미요, 말씀의 성취로써의 위대한 찬미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신구약 전체를 꿰뚫어보는 우주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노래, 생명의 노래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노래를 우리는 신령한 노래라 부른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감격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는 노래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섬김의 노래,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신령한 노래다.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 정녕 내가 부르다가 죽을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누구인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오늘도 형님과 함께 마음과 글을 나누는 이 일을 즐거워하며.......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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