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형님!
성도의 죽음을 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장소조차 장례식이 아니라 생명의 장소가 되지요.
예수께서 장례 설교를 하신 적이 없음은 성도가 이 땅을 떠남이 말 그대로 천국 환송 예배의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날마다의 일상 속에서 잠자리에 들면서 죽음을 경험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 부활을 경험하지요.
어느 날 주님이 부르시면 홀연히 떠날 기약이 차도록 하늘 심부름 잘해야겠습니다.
오늘은 문장 부호에 대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이 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문장 부호
어느 교수가 대학에서 저널리즘 편집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동사가 언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하고 이렇게 설명했다. "동사는 행동을 묘사합니다. 그리고 행동이야말로 모든 글의 중심이 됩니다."
한 학생이 그 교수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명사는 사람과 사물을 나타냅니다. 저는 사람과 사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교수는 내기를 하자고 제의했다. 내가 명사가 없는 문장을 만들 테니, 학생은 동사가 없는 문장을 만들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수는 칠판에다 썼다. "항복해!"
그러자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교수는 자신이 내기에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생은 칠판으로 걸어 나와 이렇게 썼다. "바보!"
글의 문장 부호
글을 완성하는 것은 문자가 아니라 화룡점정 같은 문장 부호다. 마침표가 없으면 문장이 완성되지 않고, 쉼표가 없으면 글이 뒤섞이고, 물음표가 없으면 독백이 되고, 느낌표가 없으면 감흥이 없고, 따옴표가 없으면 너무 주도적일 수 있고 편협하고 옹색해질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여러 가지 삶의 부호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인생이 다듬어지고 깊은 맛이 난다. 쉼표, 물음표, 느낌표, 말없음표, 따옴표가 생활 속에 적절히 자리 잡고 있어야 멋진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인생의 문장 부호
내 인생 자체가 수많은 문장 부호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만이 내 인생의 진정한 문장 부호가 되신다. 우리가 주님을 발견할 때마다 감격하며 그 감격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젊은 이들은 느낌표 쪽에 더 많은 감성을 싣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온 부부들에게는 말줄임표로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삶, 결혼, 행복은 각자에게 어떤 문장 부호로 다가올까? kiss의 품사를 이론적으로 명사와 동사로만 알고 있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져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키스는 접속사, 감탄사라고 말할 것이다.
느낌표(감탄사) 하나로도 너무 충분해
삶의 부호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렇게도 애절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줄을 몰랐다. 우리들의 감성은 날마다 감사와 감탄으로 기뻐하며 사는 것임을 더욱 절절히 깨닫는다. 그 감성은 숨을 불어넣는 생명의 숨이며, 이론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끌어내리는 견인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미묘함을 느낌표(감탄사) 하나가 말없이 전한다. 이 느낌표에는 수많은 말과 생각과 감성이 녹아있다. 그러한 감성은 최종 주님의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성품으로 온전하게 되어 신의 성품에 이르기를 소망하게 된다.
온 누리에 가득한 하나님의 선물들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크고 작은 사랑의 섭리를 헤아려 볼 때마다 그저 숨 막히는 감탄만이 있을 뿐이다. 감탄사가 없는 하루는 축복의 하루일 수가 없고, 감탄사가 없는 기도는 진정한 감사의 기도일 수 없다. 감탄사는 자연히 명령어를 동반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1-2).
인간은 물음의 존재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물음의 존재이고, 물음을 통해 성장한다. 어린 아이의 생기발랄함은 물음에 있다. 묻고 또 묻기에 아이의 영혼은 맑다. 보이는 것마다 쉬지 않고 묻기에 마음과 영혼이 자란다. 물음이 아이의 성장 영양소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 또한 깊고 오묘하고 신비롭기 그지없다. 쉬지 않고 묻고 찾고 관찰하고 파헤쳐도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 힘들만큼 세상과 삶은 한없이 복잡하고 현묘하다. 세상과 삶은 정말 호기심 천국이다. 그런 세상을 어찌 묻지 않고 살 수 있으랴? 생각하고 묻고 두드리면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인생의 알짬이다. 신앙도 물음을 통하여 믿음을 확장하는 삶이다.
인생의 조교 따옴표.
모든 글이 그렇듯이 글은 이전의 글에 빚진 결과이다. 대부분의 글은 이전의 글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한 것일 때가 많고, 이전의 글을 부정하는 글이라 해도 이전의 글이 숨쉬고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는 면에서 따옴표가 없는 글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인생에는 따옴표가 필요하다. 인생의 조교들로부터의 따옴표를 빌어다가 인생을 배움이다. 인생보다 더 큰 인생의 스승은 없다. 인생은 끝없는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반대로 나의 인생도 누군가에게 따옴표가 되어야 한다. 내 인생의 한 토막이라도 누군가에게 가르침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를 자라게 하는 삶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이렇듯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느낌표를 가지고 피차에게 인생의 쉼표가 되어주며 의미가 되어주기 위해서 은총의 만남들을 가꾸어 간다. 인생의 쉼표는 분주한 나를 멈추게 하며, 때로는 고통과 기쁨 속에서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와 따옴표 속에서 삶의 진지함을 배우고 거짓이 난무하는 수많은 말들과 말 많은 세상에서 때로는 겸손히 말없음표(말줄임표)로 침묵을 배운다.
주님은 우리 삶의 마침표요 영원한 쉼표가 되신다.
글을 읽으며 인생을 살면서 적당한 멈춤이 필요하다. 쉼표는 삶의 여백이다. 생활을 멈추어야 성찰과 묵상을 할 수 있고, 삶을 섬세하게 음미할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깊이 응시할 수 있다. 쉼을 통한 성찰과 묵상이 없는 세상살이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 하나님께서도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멈추셨다. 멈추어야만 창조한 세계를 깊이 응시하시며 음미할 수 있고, 멈춤을 통해서만 창조와 종말의 완성을 누릴 수 있다.
잘 사는 것, 잘 늙어 가는 것, 잘 죽는 일이 여기에 있다. 주님의 영원한 안식의 나라에 기대어 사는 삶이다. 우리네 삶은 아직 언제나 버겁고 부대끼며 논리와 이치가 뒤바뀌고 문장이 뒤 바뀌는 세상이어도 이해되고 포용되는 그날까지 사랑의 전쟁과 평화를 조화롭게 공존시키며 함께 걷는 이 땅의 순례자다. 하늘 법정에서 내리는 은총과 심판의 소리 들을 줄 아는 진리의 아들이요 영광의 자녀임을 자각하며 사는 자다.
이 땅에서 주님의 임재 앞에 내 삶의 의무를 다 끝내고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시는 마지막 그날까지 겸허한 마침표 하나 네모난 상자에 들어가기까지 하늘의 심부름 잘하는 것이리라. 그 인생의 마침표 내가 찍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마침표를 찍어 줄 때까지 묵묵히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 생애 끝나는 날 길동무로 걷다가 어느 날 신이 부르시면 기쁨으로 함께 마침표 찍어야 한다.
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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