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가을은 화(和)의 계절입니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화를 이루고 초록과 단풍이 화를 이룹니다.
하늘의 푸른빛과 구름의 흰빛의 어울림도 이때가 더욱 그러합니다.
화는 화음(和音)이고 화성(和聲)이고 화목(和睦)이고 화평(和平)이고 화친(和親)이고 화해(和解)입니다.
그런데 화는 벼 禾에 입 口를 붙인 말입니다.
벼는 밥의 재료이고 입은 밥이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벼는 밥이 됨으로서 또 입은 그 밥을 먹음으로서 화(和)가 이루어진다는 말이겠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고 또 그 밥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이것이 천국의 이미지가 아니겠습니까?
이 밥을 한상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는 가정, 이 밥을 거룩함에 담아 먹고 마시는 교회가 바로 천국일 테니까요.
"시인은 마른 갈대 잎이 흔들리는 소리에도 창조주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19:4)라고 노래한 히브리 시인의 탁월한 영적 시상과 감성을 얻고 싶습니다.
자연은 정말 정묘(精妙)한 예술이고,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나무에서 성장을 배우고, 꽃의 미소에서 노래를 익히고, 낙엽에서 고독을 알게 되고, 바람에서 인생의 무상을 깨닫게 됩니다.
망망한 바다와 높푸른 하늘은 경외심을 갖게 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풍요와 위엄을 나타냅니다.
자연 속에서 다양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은 한이 없는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자연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유린하고 착취해도 되는 대상도 아닙니다.
사랑하며 함께 살아야 할 가족이요, 다정한 벗이요, 서로 도와야 할 이웃입니다.
정말 자연은 가장 자연스럽고 진실한 것을 낳는 모태요 고향입니다.
밀실이고 산실이고 요람입니다.
자연은 철학을 낳고, 진리를 낳고, 시를 낳고, 음악을 낳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도 거짓을 부리지 않습니다.
자연은 인자한 어머니요 다정한 친구요 거짓을 모르는 애인입니다.
가을을 마음껏 노래합시다.
가을을 주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합시다.
가을을 느끼고 사랑하고 나눌 수 있는 건강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금의 나의 나 된 것을 감사합시다.
가을에는 생명, 떠남, 결혼, 고독, 열매 등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입니다.
모든 사물들을 지칭하는 단어 하나하나마다 절절함이 묻어있는 계절입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결자해지 할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남기야할지, 무엇을 더 나누어야할지 당신을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즈음하여 미국 포틀랜드에서 목회하는 형님과 조카가 몇 년 만에 한국에 나와서
강원도 양양 바닷가 솔비치 콘도에서 2박3일간 가족 모임으로 즐거운 휴식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단풍이 부분적으로는 절정에 이른 곳도 있지만 아직은 전체적으로 피크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형님!
언제라도 형님과는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대화들을 상시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의 성향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형님과는 소통을 통해 대통을 얻는 일이 참 많습니다.
저의 글 쓰기에 대해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음을 형님은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진짜 비판이다 싶은 것을 스스로 의식할 때는 결국 더 많은 수용을 위한 인격과 성품으로 체화되기를 자각합니다.
나머지는 또 다른 소수로 살아가려는 저 나름의 치열한 삶의 구도적 자세입니다.
그래도 남는 나를 향한 비판적이다 싶은 다른 이의 의견과 느낌도 물론 내 것이기에 그 분량만큼
자신을 향한 정직한 비판(진단)과 성찰도 함께 성장하며 성숙을 기해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것은 순전히 나의 진짜 못난 미숙함입니다.
형님!
이 아름다운 계절 가을은 더 많이 하늘이 높고 푸릅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습니다.
비우려는 만큼 채우고 싶은 것인지, 채우고 싶은 만큼 비우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옛일들을 생각하면 추억들에 정겨운 것도 아픈 것도 실수도 실패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요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숱한 상념과 감정의 부산물들을 그저 낭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엉터리가 많았습니다.
다른 것보다 적어도 사람과의 관계 만큼은 사랑하며 부요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저는 삶의 가장 큰 주제가 용서가 아닌가? 라는 질문과 답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용서를 하는 일과 용서를 받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특히 나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이 큰 주제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일에 실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깊이 있는 생각과 육중한 언어로 내게 말하려는 사람의 대화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형님은 제게 그런 분입니다.
11월 8일 한나의 결혼식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만남 한분 한분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평강이 넘치며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결혼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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