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영적 쉼표

새벽지기1 2015. 6. 3. 12:20

 

샬롬! 찬미예수

 

형님!

 

고독, 외로움, 단절의 느낌 등등 바닥을 치는 듯한 허무와 인생 밑둥가리가 흔들리는 듯한 삶의 부재를 느껴보셨는지요?   

철저한 고독, 철저한 외로움, 존재의 뿌리까지 휘젓는 아픔과 삶의 부정을 맛보았는지요

십자가 상에서의 하나님의 침묵이 예수님의 철저한 고독과 절규로 나타난 예가 바로 이런 것일까요?

우리의 삶 속에 잉태한 이러한 삶의 실존적 고뇌와 인간 존재의 본질을 가늠하는 죽음 같은 고독은 무엇일까요?  

형님은 특히 이러한 부분에서도 남다른 깊은 영성이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종종 이러한 주제를 접하고 생각하다보면 점과 같이 작고 티끌 같고 먼지 같이 작은 존재로 몸서리가 쳐질 정도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생각들로 좀 더 진지하게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고독, 외로움, 단절의 아픔을 느낄 때

 

영성훈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영적인 삶의 진보를 이룬 사람치고 어느 시점에서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것들은 하나님 나라의 요동치 않는 견고한 발판을 찾고 지키게 해주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독, 소외감, 외로움, 인정받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심리다.

군중 속에 있어도 고독한 현대인, 그리고 스스로 홀로 있음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어느 누군가 "혼자 있으면 가슴 밑바닥에서 회오리바람처럼 올라오는 외로움과 고독이 목구멍까지 꽉 차 오른다."고 했다.

고난에서 고독을 제하면 그 고난의 강도는 50%가 삭감된다고 한다.

배가 고플 때 생리적인 배고픔 때문에 힘든 것도 있지만 배고픔으로 인해 느껴지는 서러운 감정,

슬픔이 반절의 무게로 더 힘들게 한다는 논리와 같다.

내 삶에서 내가 겪는 아픔의 고난 중에서 나 홀로 외롭게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독감만 없어도 고난의 체감온도는 반 절로 뚝 떨어진다.

그러기에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함께 나누고 겪으면 훨씬 수월하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 그중에서 또 다른 소수로 살아가면서 좁은 문,

좁은 길로 뚜벅 뚜벅 걸어간다는 것이 여간 힘들고 고달픈 삶이 아닐 수 없다.

혼자 스스로는 고고히 외다리 학처럼 이 세상을 버텨낼 능력이 없다.

독일의 신학자 폴 요하네스 틸리히는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이라 했다."

그는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한다. '외로움'은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되는데서 오는 '홀로 있음의 고통'이다.

외로움이라는 말에는 타인의 부재나 쓸쓸함이나 아픔이 더 배어 있다.

그러나 고독에는 기쁨과 가능성의 기운이 담겨 있다. '고독'은 내 존재의 근원과 하나 됨의 희열을 누리는 '홀로 있음의 영광'이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이들은 많지만 고독이야말로 외로움의 치유 제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고독은 가슴 속의 시를 꺼내 준다.

외로움은 마음 울리는 시를 가슴에 새겨 준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다.

외로움은 외부적인 요소이고 고독은 내면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외로움은 주변에 손 내밀만한 사람이 없는 그 홀로됨이고고독은 손 내밀면 내면적으로 밀려오는 그리움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외로움은 고독보다 더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였을 때, 모든 것들로부터 격리되어 혼자가 되었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감정이다.

고독해 본 사람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깊이 사색할 힘을 가지며 진정한 용기를 얻는다

 

하나님과 단둘이 있을 때, 듣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고독이란, 곧 나를 '사랑하는 자'라 부르는 음성, 나를 다음 장의 모험으로 이끄시는 음성,

하나님이 예수님께 하신 것처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3:17)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리다.

'사랑하는 자' 라는 말은 우리 삶 전체에 생생히 울려 퍼질 수 있다!

 

당신은 들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아들' 이라고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다.

이것이 그분의 사역과 소명의 기초다.

그분은 단순한 피상적 선행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임재 자체를 품으셨다.

 

역사 속에서의 이순신을 생각해 본다.

그는 단 13척의 전선으로 수백 척에 이르는 적선을 맞아 싸워야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엄습했을 두려움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홀로 수백 척의 적선을 향해 돌진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적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독한 고독을 이겨낸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 그건 고독과 마주하며 사색하고 진정한 자신과 만날 때 생겨난다.

고독은 우리가 혼자여서 치유가 필요하다는 서글픈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고독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말자.

그리스도인에게 고독은 단순히 숲이나 사막이나 산꼭대기에 숨어들어 은밀히 칩거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감히 선다는 뜻이다.

단순히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단 둘이 있기 위해서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안식을 실현하는데 특히 도움이 되는 습관을 기르고 영적 훈련을 이루자.

자주 영적인 골방을 통하여 고독과 침묵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요동치 않는 견고한 발판을 찾고 지켜내자.

일상 속에서의 잔잔한 묵상과 마음의 산책과 고독과 침묵은 영적 쉼표 찍기의 훈련이다.

 

 

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