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찬미예수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세익스피어 이후 가장 큰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수려한 외모와 천재성 그리고 낭만적 기질의 3박자를 두루 갖춘 불세출(不世出)의 시인이다.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 종교학 시간에 있었던 시험에 관한 그의 일화가 유명하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의 기적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라"는 것이 그날의 문제였다.
강의 안의 모든 학생들은 저마다의 답안을 열심히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험 감독을 하던 교수는 답안지에는 단 한 글자도 적지 않은 채 창밖의 먼 산만 바라보는 한 청년을 발견했다.
그 교수는 그 청년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왜 답안을 작성하지 않나?" 그 청년은 대답했다.
"저는 쓸 말이 없습니다."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시험이 끝나기 5분 전까지도 그는 미동도 않은 채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강의실엔 그 교수와 청년만 남았다. 그 교수는 청년에게 다가가 최후통첩을 했다.
"단 한 줄이라도 쓴다면, 낙제는 없을 걸세."
그 청년은 이윽고 펜을 들더니 답안지에 답을 적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
'물이 그 주인 예수님을 만나니 부끄러운 듯 붉게 변한 포도주'라는 표현이 절묘하다.
과연 영감 받은 시인의 문장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은 다 그 주인께 순종한다.
어떠한 죄인도 인생의 참 주인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게 붉어질 수밖에 없다.
이 답안으로 인해 최우수 학점을 받은 그 청년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바이런이 왜 불멸의 시인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시인으로서의 천재성을 그는 그 한 줄에 유감없이 담아내었다.
포도주를 얼굴이 붉어진 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진짜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되는 듯하다.
그의 답안에 최우수 학점을 준 교수 역시 존경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바이런의 답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통전적인 이해와 통찰이 들어있다고 생각된다.
누구든 인생의 참 주인을 만나면 삶의 본질이 변한다.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바치신 사랑과 희생의 피를 상징한다.
그 피를 통해서 우리와 새로운 언약을 맺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혼인 잔치는 우리가 맞이하게 될 "종말론적 행복(잔치)"를 말한다.
그래서 요한복음저자는 첫 번째 기적인 가나 혼인잔치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표징으로 표현해 놓았다.
'포도주'는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지금이야 술을 얼마든지 아무 때나 살 수 있지만, 그 당시 준비된 술이 없다는 것은 혼인잔치가 끝이라는 것이다.
음악도, 춤도, 웃음도 모든 즐거움과 흥이 깨지고 잔치가 파장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술이 떨어졌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었던 언약관계가 깨어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왜 계약관계가 깨어졌을까? 계약관계가 깨지는 이유는 당연히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계약'을 상징적으로 '혼인'으로 표현해 놓았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신랑인 남편이요,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바람만 피우는 신부인 아내로 표현한다.
늘 신랑은 계약에 충실하지만, 아내인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을 저버린다. 그래서 혼인관계는 깨어진다(호2:4).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서 새 언약을 맺게 해주신다는 약속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흘리신 보혈을 의미한다.
그 피가 바로 포도주인 셈이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없어 혼인잔치가 끝나게 되었지만, 물이 변하여 새 포도주로 인하여 다시 혼인잔치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맺은 언약이 바로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이다.
우리는 주님과 영적인 혼인 계약을 맺은 것이다.
혼인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이 믿음이다. 그 믿음이 깨지면, 행복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약속해놓고,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맺었던 혼인관계가 완전히 깨어진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바빌론 포로 생활이었다.
그들에게 포도주를 먹고 흥겹게 춤을 추었던 시대는 사라져 버리고, 눈물과 애환만 남은 시기가 바빌론 포로 시기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에 불충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다시금 "새로운 언약"을 맺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렘31:31-34; 33:20-26 말씀은 이에 대한 그 유명한 예레미야 언약의 골조가 담지되어 있는 본문이다.
이사야 62장 5절의 말씀을 보면, 이제는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나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에 깨졌던 언약을 다시금 새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희망의 메시지를 간직하면서, 신약의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술이 떨어졌다"는 점을 우리 삶에서 바라보자.
우리 삶도 혼인잔치와도 같다. 그때 우리 삶에서도 술이 떨어지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갑자기 다가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 시련들, 고통들, 그래서 웃음과 기쁨은 사라지고 한숨과 막막함이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포도주가 떨어져 혼인잔치가 끝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켜 주신다.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피다.
한 가정에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 가정을 위해 지난 시간동안 온 힘을 다해 살아온 부부의 큰 희생과 사랑이
바로 "포도주"를 빚는 시간들이었으리라.
그 포도주로 인해 가정이 지켜지고, 비록 어렵지만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어려운 순간들을 잘 극복하고 인내하면서 섬기고 희생하고 기도하는 것을 통하여 주님은 이 모든 상황들을
포도주와 같은 질적인 삶으로 우리들을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이 세상이 삭막하다고 하지만, 주님은 물 같은 우리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신다.
우리 자신이 "항아리의 물"과도 같다. 물론 그 물은 특정한 어떤 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물이 예수님을 만나,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듯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 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포도주가 될 수 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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