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속성이라는 것이 언제나 반대파를 가지게 됩니다. 아하수에로도 지근 거리에 있는 내시 빅단과 데리시에게 원한을 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한은 자라서 암살을 기획하게 합니다. 정치라는 이념이 무서운 것은 나와 같지 않으면 원수가 됩니다.
우리 나라 역시 남북의 분열이 이러한 정치적 이념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싸움은 진행중에 있음을 봅니다.
아하수에로를 향한 암살 의도를 문지기인 모르드개가 알게 됩니다. 내시들은 모르드개가 한낱 문지기로 알았지 왕후 에스더의 작은 아버지?라는 사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의심없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문지기로 살았던 모르드개는 이 사실을 에스더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왕에게 알리고 왕은 조사하여 사실을 밝히고 이들을 사형시킵니다. 그리고 궁중 일기에 기록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하수에로는 아각 사람 하만의 지위를 높여 모든 사람들이 섬기게 합니다. 왕의 명령에 사람들이 하만 앞에 머리를 숙이고 절을 합니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무릎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절을 하지 않고 무릎을 꿇지 않은 것은 신앙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때문입니다.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높히 경배하는 것은 모르드개는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추 17:16, 심25:1).
에스더 외경에는 모르드개의 기도가 있습니다. 참고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내가 교만한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것이 그를 무시해서도 아니며 교만해서도 아니며 명예심 때문에도 아니라는 것을 아시나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의 발에 입을 맞출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높일 수가 없으며 주 외에는 누구에게도 경배할 수 없기에 이렇게 행했나이다."
이 사실이 하만에게 알려집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힙니다. 하만은 이 사실을 듣고 분노하고 모르드개뿐 아니라 온 유대인을 죽일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계획할지라도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하만은 모를 뿐입니다.
권력자 앞에 살아가야 하는 신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모르드개가 잘 보여줍니다. 작은 일이라도 자신의 직업에 충실합니다. 그리고 불의한 일에 대하여는 정직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신앙양심에 위배되는 것은 따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왕의 명령이라도 불복종합니다.
이 모든 것이 기록됩니다. 땅의 일이 왕의 궁중일기에 기록되듯이 신자의 삶이 생명책에 기록됩니다(계20:12). 오늘도 주님 앞에서 하루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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