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으로 모함 받아도 할 수 없다!
(에스더 3:7-11)
하만이 모르드개만이 아니라 제국 내 모든 유다인들을 몰살할 계획을 세우리라고 모르드개는 예상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하만의 잔인하고 치밀한 계획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에스더 3:7-11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10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신앙적 지조를 지키며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던 모르드개는 일방적으로 몰렸습니다. 분노한 하만이 모르드개만이 아니라 유다 사람을 다 말살하려는 사탄적 계략을 세웠습니다. 아마도 하만은 자신의 조상 아각이 사무엘의 칼에 찍혀 죽은 아픈 과거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울 왕은 아각을 사로잡아 살렸는데 사무엘 선지자에게 죽고 말았습니다(삼상 15:32-33). 하만은 자신의 계략을 관철시키기 위해 왕에게 아첨을 곁들여 정책적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8절). 왕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얻게 해주겠다는(9절) 달콤한 제안을 했습니다. 본래 귀가 좀 얇은 아하수에로 왕이 이런 솔깃한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인정해서 총리에 앉힌 하만의 야심찬 국정 수행 계획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하만이 제시한 유다인 말살 정책은 제국 내의 유다인을 제외한 다른 백성들에게는 환영을 받을만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모르드개는 미리 예측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기꺼이 자신이 죽는 각오는 했을 듯합니다. 하지만 하만은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유다 민족을 말살하려고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달을 결정하는 제비(‘부르’)를 뽑게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과 연관된 절기가 ‘부림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비로 뽑힌 아달 월은 11개월이나 뒤에 있었습니다. 결국 이것이 하만의 자충수였습니다. 그렇게 남은 기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역전의 기회가 충분하게 된 일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 제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역사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모르드개의 입장은 어땠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고집스러운 신앙적 결단으로 민족이 망할 위기를 자초했으니 후회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후에 보여주는 모르드개의 단호함은 자신의 신앙적 소신이 정당했음을 보여줍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포기하지 못할 신앙적 지조가 모르드개에게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르드개처럼 우리도 일터에서 간혹 목숨을 걸만한 일이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앙적 결단을 하면서 우리는 비장하고 단호한 자세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섭리의 손길을 내미시는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일하는 사람의 기도
역사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 예상하기 힘든 어려움도 우리 인생에서 겪을 수 있습니다. 비장하고 단호한 자세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섭리의 손길을 베풀어주시어 어려움을 이겨내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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