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갈라디아 전역을 다니면 설교했다.
전부를 그리스도에게 회개시키지는 못했으나 많은 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 안으로 거짓 사도들과 마귀의 종들이 가만히 들어왔다.
이와 같이 우리 시대에도
광신자들은 복음의 원수들이 우세한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복음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착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묘묘히 잠입한다.
폭군들과 복음을 박해하는 자들의 영토에서조차도 그리한다.
거짓 가면을 쓰고 집으로 몰래 들어와
그들의 독을 토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신앙을 무너뜨린다.
그런데 그들은 왜 교황주의자들의 도시나 지방에 들어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 같이
악한 군주들, 감독들, 대학의 신학자들을 앞에서 그들의 교리를 고백하고 후원하지 않는가?
이들에게 가지 않고 복음이 이미 자리를 잡은 곳,
위험 없이 심히 평온 중에 살 수 있는 곳으로 들어온다.
그러므로 거짓 사도들은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행한 것처럼
아무도 설교한 적이 없는 예루살렘의 가야바나 로마의 황제에게 달려가는 모험은
좀처럼 하지 않으려 한다.
참으로 그들은 바울이 애쓰고 고생 끝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전도하고 준비한 갈라디아에 왔으며,
아무도 박해하지 않고 모든 것을 조용히 인내하고 있는 착한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아시아와 고린도에 들어왔다.
거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은 박해도 받지 않고 심히 자랑하며 살 수 있었다.(루터, 46쪽)
이제 오늘로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해> 인용은 끝났소.
아주 일부만 맛보기도 인용했소.
저런 책을 독파한다면 루터의 신학, 그의 영성을 깊이 알 수 있소.
오늘이 종교개혁 494주년 되는 날이었소.
개혁은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가능한 게 아니오.
여러 요소들이 함께 어울려야 하오.
그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신학적인 통찰이오.
루터는 신학자요. 그는 개혁의 당위를 신학적으로 해명한 것이오.
그런 신학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개혁은 추동력을 얻을 수 없소.
한국교회의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그대는 우선 신학공부를 하시오.
목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영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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