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죄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2:1-20) / 신동식목사

새벽지기1 2024. 10. 12. 06:23

히스기야 그리고 므낫세 이어서 요시아가 등장합니다. 참 역사가 스펙타클합니다. 하나님께서 8살에 요시아를 왕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31년을 통치자로 삼습니다.

요시아 통치 31년은 유다가 다시금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요시아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였습니다. 그는 조상 다윗의 길로 갔습니다. 우상숭배의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시아를 평가하기를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의 길 즉 정도를 걸었다는 말입니다.

요시아가 18년 통치할 때 성전에 드린 헌금을 통하여 성전 보수에 사용하게 합니다. 이것을 맡은 이는 대 제사장 힐기야 이고 서기관은 사반입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이들은 작업자들에게 일을 맡깁니다. 작업자들이 정직하게 행하였으므로 재정을 회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대 제사장 힐기야는 성전을 보수하는 중에 율법책을 발견하고 서기관 사반을 통하여 왕에게 전달합니다. 요시야는 사반을 통하여 받은 율법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은 바로 율법을 순종하지 아니함을 알게 됩니다.

이에 제사장 힐기야, 아히감,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자 홀다에게로 갑니다. 홀다는 예루살렘 2째 구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홀다는 이들의 방문 내용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우상숭배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빈터가 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겸손히 통곡하여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회개기도를 들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시야는 생전에 모든 재앙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보호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말씀은 좌우를 분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욘4:1). 즉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앙과 세계관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런 요시아가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정직한 신앙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가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말씀은 신자의 중생을 가져오고 성화의 삶을 살게 합니다. 말씀이 신자에게 주어지면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좌우를 더욱 견고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를 부르신 하나님은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사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이 모든 이들의 삶을 균형있고 분별할 수 있으며 정직하게 살 수 있게 합니다.

예수 믿음은 말씀이 신자의 내면에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있으면 좌우를 균형있게 보고 자신의 죄성을 더욱 각성하게 됩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회개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성경은 성령이 임한 자의 특징을 마음의 부드러움이라 말합니다(겔 36:26).

교회와 세상의 변혁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직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을 때 따라옵니다. 그래서 오늘도 푯대이신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