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이주민의 두려움 (창12:10-20)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5. 5. 06:51

해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네겝 지방에 기근이 듭니다(10절). 그 기근이 매우 심했던지 아브람은 이집트로 잠시 피신하기로 마음 먹습니다(11절).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아브람에게는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아내 사래의 미모 때문에 이집트 본토인들이 자신을 해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낯선 땅에 몸 붙여 살기 위해 온 이주민에게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사래에게 자신을 남편이 아니라 오빠라고 부르라고 부탁합니다. 실제로 사래는 아브람의 배 다른 누이였으니 거짓말은 아닙니다(12-13절). 오누이로 속이고 잠시 머무르다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한 마을에 정착했을 때, 사래는 이국적인 미모로 인해 이집트인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아브람은 가까스로 아내를 보호했으나, 그 소문이 바로에게까지 알려집니다(14절). 왕의 절대 권력 앞에서 아브람은 아내를 더 이상 보호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는 사래를 후궁으로 삼습니다(15절). 그 댓가로 아브람은 바로에게 많은 재산을 얻습니다(16절). 아내를 빼앗긴 후 아브람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고, 사래는 바로에게 능욕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이 내립니다(17절). 사래를 후궁 삼은 일로 인해 일어난 재앙이라고 바로가 단박에 느낄 정도로 심한 재앙이었습니다. 바로는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는 아브람을 심하게 꾸짖습니다(18-19절). 다행히 바로는 그의 목숨을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아브라함과 그 가솔 모두는 이집트에서 추방 당합니다. 

 

묵상:  

때로 성경의 정직함에 놀라곤 합니다. 아브람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숭앙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첫 번째로 기록한 사건이 이토록 수치스러운 사건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더욱 신뢰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이집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너무 쉽게 아브람의 비겁함을 탓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력한 이주민이 되어 보지 못한 까닭에 가지는 오해입니다. 무작정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이주하는 남미 사람들 혹은 죽음을 각오하고 중국으로 넘어가 유랑하는 탈북민들을 상상하면 아브람의 행동을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야만적인 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시대였습니다.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로 이주한 아브람은 토착민들로부터의 수탈과 유린과 폭행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은 아내를 팔아서라도 살아 보려는 얍삽한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든 아내를 지켜내려는 궁여지책이었습니다.

 

그가 정착한 지방의 권력자들과 부호들이 사래를 가지고 싶어서 여러가지로 아브람을 압박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아브람은 한 동안 사래를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대권력자인 이집트 왕의 요구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의 요구 앞에서 아브람은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아내를 내어주지 않으면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후궁으로 살더라도 일단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옳다 싶었을 것입니다. 바로는 사래를 후궁으로 삼는 대가로 많은 재산을 아브람에게 안겨 줍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의 궁에서 능욕 당할 아내 생각에 잠을 못 이루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오늘날 낯선 땅을 유리 방황하며 살 길을 찾고 있는 이주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혹시나 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운 표정으로 두리번 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도둑놈, 강간범, 살인자”로 낙인찍고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사래를 바로의 폭력으로부터 구해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의 이주민들을 살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마음으로 내 곁에 있는 이주민들을 돌보기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