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잠언 26장: 미련함에 대해

새벽지기1 2024. 2. 6. 04:29

해설:

이 장에는 네 가지의 주제에 대한 격언 묶음이 나옵니다. 문학 양식으로 볼 때, 이 장에 나오는 격언들은 다양한 비유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1절부터 12절까지는 미련한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격언입니다. 시가문학과 지혜문학에서 ‘어리석다’ 혹은 ‘미련하다’는 말은 지능이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 고집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과는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떤 일을 맡기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고, 그런 사람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높여주는 것은 해를 더할 뿐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지혜를 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어지는 격언들은 게으름(13-16절), 다툼과 험담(17-22절) 그리고 언어 생활(23-28절)을 다룹니다. 이 세 가지의 주제들은 미련함과 지혜로움이 일상 생활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먼저, 13절부터 16절까지는 게으름에 대한 경고입니다. 게으름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법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게으름을 피웁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성실하고 부지런합니다.

 

17절부터 22절까지는 다툼과 험담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자기와 관계 없는 싸움에는 끼어 드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험담을 하거나 중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말에 솔깃하여 귀를 내어 주는 것도 미련함의 증상입니다.  

 

23절부터 28절까지는 언어 생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도구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미련한 사람들은 자신을 은폐하고 위장하는 도구로 언어를 오용합니다. 그들에게 말은 상대방을 속이고 갈취하고 억압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 악의는 결국 그 사람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지혜를 찾는 사람은 언어 생활에 있어서 언제나 진실하고 친절하기를 추구합니다. 

 

묵상:

시편과 지혜서에서 ‘어리석음’은 ‘완고함’, ‘분별없음’ 그리고 ‘부패함’을 의미합니다.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듯, 어리석음의 근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시편 14:1; 53:1). 하나님의 존재는 세상 만물 안에 환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롬 1:19)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은 그것을 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은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도록 힘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진실에 마음을 걸어 잠그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돌이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논리로도 설복되지 않고, 어떤 증거를 제시해도 돌이키기를 거부합니다. 자기들이 가장 지혜롭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돌아서는 것는 오직 그들 스스로 깨우치고 돌아서기를 선택할 때 가능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한계를 만나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돌아서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의 돌이킴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사랑으로 그 사람을 품어주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매력을 보여 주며, 그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해산의 수고’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