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일상 정지(2)

새벽지기1 2024. 2. 2. 04:2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kr13:15,16)

 

일상을 멈춘다는 어제의 묵상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일상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상보다 더 소중한 일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하나님의 창조, 그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건 아주 명백한 사실입니다. 밥을 먹거나 숨을 쉬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일상은 곧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가족이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도 역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역사에 동참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노동도 다를 게 없습니다. 도로테 죌레는 <사랑과 노동>에서 인간이 행하는 이 두 행위를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보더군요. 일상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런 일상을 멈춰야 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첫째, 일상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끔 호흡 곤란을 경험한 사람은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압니다. 위암 수술을 받아본 사람은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압니다. 이혼 경험이 있는 사람은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이런 점에서 간혹 일상과 완전히 단절되는 수도원 생활의 경험도 필요합니다.

 

둘째, 일상의 궁극적인 한계를 알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소중해도 언젠가 그것을 완전히 놓아버려야 할 순간이 옵니다. 죽음입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숨도 멈추고 책읽기도 멈추고 가족과의 관계도 포기해야 합니다. 여기에 제외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는 그런 운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 순간을 미리 당겨 살아가는 공부가 필요하겠지요.

오늘 현대인들에게는 일상이 과도합니다. 일상의 소중함도 묻히고, 그것의 한계도 외면당한 채 기계처럼 확대 재생산될 뿐입니다. 그 모든 것이 차창 밖의 풍경처럼 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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