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막13:12)
제자들이 당하는 시련에는 앞 절에서 거론된 것들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의 불화, 더 나아가서 가정의 해체입니다. 앞의 것들은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이것은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양쪽 모두 제자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시련들입니다.
원래 가정의 해체는 묵시문학적인 진술입니다. 미가 7:6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사람이리로다.” 마가복음 기자는 이런 구약의 묵시문학적인 진술을 제자들이 당해야 할 시련과 접목시켰습니다. 그가 볼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친척과 가족들에게까지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이런 일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겠지요.
가족 공동체는 본능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허튼 게 아닙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이 가족 공동체는 사람의 영혼을 질식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어떤 것인지 제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그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만 한 마디 하겠습니다. 가족 구성원은 상대방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그것의 극단적인 경우가 ‘마마보이’로 나타납니다. 에릭 프롬은 그 상황을 ‘공서(共棲)적 합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에 불과합니다.
유대교와 다양한 고대 종교 및 헬라 철학이 지배하던 고대 근동과 그리스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감수해야 할 시련은 거의 묵시문학적 재난과 비교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뚫고 기독교가 세계 역사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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