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말과 성령(막13:11)

새벽지기1 2024. 1. 31. 05:59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13:11)

 

이미 9절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제자들은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고 로마 정권에게 큰 박해를 받을 겁입니다. 마가복음의 이런 진술은 초기 기독교가 당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심문에 적절히 대처하려면 자신의 무죄를 보장할만한 증거들을 수집해두어야 합니다. 변호해줄 증인들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위 구절은 그런 준비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성령이 대언자라는 겁니다.

 

이런 말을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성령이 마치 천사처럼 나타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무조건 대신해 줄 것처럼 말입니다. 신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어떤 신학생이 학기말 시험 때 공부는 하지 않고 기도만 열심히 했습니다. 성령이 도와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시험지를 받아놓고 보니 앞이 깜깜했다는군요. 이 친구 왈, 성령도 시험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군.

 

그렇다면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오, 성령이시니라.”는 본문은 무슨 뜻일까요? 이 경구는 하이덱거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하이덱거는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말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 말은 곧 존재가 언어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언어가 말을 건다는 시인들의 경험도 이와 같습니다.

 

성령이 말한다는 영적 차원은 성령에 사로잡힐 때만 주어지는 경험입니다. 시인이 시적 영감에 사로잡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자아가 한없이 축소되는 대신에 생명의 영이 우리의 전 존재를 가득 채운다는 뜻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사람에게 이런 일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데서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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