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25절: 염려하지 말아라
사역:
“이런 까닭에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살기 위해 무엇을 먹어야 하나 혹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 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옷이 몸보다 더 중요하지 않느냐?”
해설과 묵상:
“살기 위해 무엇을 먹어야 하나?” 혹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라는 질문은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넉넉한 사람의 경우라면 더 맛난 것을 먹고 더 멋진 옷을 입고 싶어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반면, 하루 벌어 하루 먹어야 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내일 일감이 없으면 어떡하지?” 혹은 “내일 입고 나갈 옷이 없는데 어떡하지?”라는 뜻이 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듣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아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염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일 인력 시장에서 일감을 얻지 못하면 가족이 하루를 굶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겉옷을 저당 잡고 돈을 빌렸는데, 채권자가 겉옷을 돌려주지 않으면 밤에 이불이 없어서 떨어야 하고 낮에는 속옷만 입고 나가 일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염려하지 말아라”고 명령하는 것은 무신경 해보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옷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너무나 당여한 말을 왜 하실까요? 목숨은 음식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가집니다. 몸에 비하면 옷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입니다. 그 귀한 몸과 목숨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 엄청난 것을 주신 하나님이라면 음식과 옷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앞에서 거듭 강조한 것처럼, 우리의 필요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고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공급해 주시는 것을 믿고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안정된 삶을 위해 계획하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일 먹고 입을 것을 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힘 닿는 대로 계획하고 노력하되 자신이 하나님의 역할을 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공급해 주실 것을 믿고 계획하고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계획과 노력이 불안과 근심과 염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든든한 믿음에서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안 되면 어쩌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되겠지. 안 되면 허락하지 않으시는 거겠지”라는 마음으로 내일을 맞으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져 있던 ‘만성적 염려증’을 치료하려 하십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핍절한 상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갈릴리 지방은 경제적 불의가 극심하여 대다수의 평민들은 세금과 빚에 짓눌려 살았습니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어떤 이들은 의적떼에 가담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무장 봉기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매일 근심과 염려 그리고 체념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부터 죽어가고 있던 그들을 살려내려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세상을 한번에 뒤집어 엎을 수 없다면, 우선 마음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 시대의 갈릴리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에도 근심과 염려를 품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안과 염려와 근심이 만성병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이들에게 그런 사람들을 돌아 보라고 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줄어들도록 세상을 고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근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 사는 사람들이 복음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목숨과 몸을 주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알고 믿으면 현실을 견디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다수에게 “무엇을 먹어야 하나?”라는 질문과 “무엇을 입어야 하나?”라는 질문은 생존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자족과 절제에 대한 질문이 됩니다. 염려와 근심으로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음식을 위해 돈을 허비하지 않게 될 것이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명품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명품을 사 모으고 그것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실존적인 허기를 채우려는 몸부림입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히 만족한 사람은 ‘절제’와 ‘단순함’과 ‘소박함’의 미덕을 따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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