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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24절: 하나님, 수단인가 목적인가?

새벽지기1 2023. 11. 12. 06:51

마태복음 6장 24절: 하나님, 수단인가 목적인가?

사역:

“아무도 주인 둘을 섬기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둘 중 하나는 미워하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게 되거나, 하나에게는 잘 하고 다른 하나는 등한시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가 하나님과 돈을 모두 섬길 수는 없다.”

 

해설과 묵상:

보물에 관한 말씀에 이어 돈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24절의 말씀은 22-23절의 말씀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당연하게 여겨졌던 노예 제도를 비유로 삼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불의한 노예 제도를 비판하지 않으시고 비유로만 사용하신 것을 두고 그분이 사회적 불의에 대해 방관하셨다고 비판합니다. 이 비판에 대해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영혼 구원에만 관심을 두셨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둘 다 옳다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회적 불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니, 그분의 관심사는 한 개인과 한 사회를 넘어 온 세상과 우주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분은 그 모든 문제의 근원이 인간의 죄에 있다고 보셨습니다. 그분은 대증적인 치료(질병, 장애, 억압, 가난, 전쟁, 재해 등)에도 관심을 두셨지만, 근원적 치료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셨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증적인 치료는 응급처지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한 사람의 노예가 주인 둘을 섬기는 예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의 끝은 언제나 좋지 않았습니다. 종과 두 주인이 아무리 진심을 다하려 해도 이기심과 경쟁심과 시기심에 휘둘리게 되고 결국 종의 마음은 한편으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주인과 종이 좋은 관계 안에서 살아가려면 주인은 종의 삶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고, 종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성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인간은 누구나 ‘맘모나스’를 주인으로 섬기게 됩니다. ‘맘모나스’는 ‘돈’, ‘물질’, ‘부’ 등으로 번역됩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사물로 인식하지만 남성 명사 ‘맘모나스’는 그것을 인격으로 여깁니다. 우리 말로는 ‘물신’(物神)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악한 영은 물질을 가지고 인간의 타락한 마음을 노예로 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 혹은 물질은 우리에게 신과 같은 구속력을 발휘합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앞에서 보물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온전히 조율되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들을 귀하게 여기게 되면 우리는 맘모나스로에 의한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맘모나스의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맘모나스에게 우리는 노예였지만, 하나님에게 우리는 사랑 받는 자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머물러 살며 그분의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의 존재가 채워지면 우리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옆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아래로 모든 생명과 물질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죄는 이 질서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위로는 물질을 섬기고, 옆으로는 이웃과 경쟁하며, 아래로는 하나님을 부리려 합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부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번영의 복음이요 기복신앙입니다. 그들은 맘모나스를 신으로 섬기며 살다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분의 능력으로 더 많은 맘노나스를 얻으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믿음은 결국 하나님에게 실망하여 그분을 떠나게 만듭니다.

 

악한 영은 우리의 마음의 눈을 멀게 하여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를 교란시킵니다. 그 교란에 넘어가면 우리는 어느 새 하나님을 부리려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리려 한다고 해서 부림 당할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부질 없는 몸부림으로 인해 불행을 당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부릴 수도 없고 부려서도 안 되는 하나님을 부리려 하다가 결국 그분에게서 영원히 떨어져 나가는 불행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 앞에 머물러 마음의 눈을 씻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분의 사랑으로 내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맘모나스의 휘둘림에 넘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서만 오늘 주어지는 것에 자족하면서 하늘에 속한 것들을 위해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