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5-6절: 기도의 의미
사역:
“또 너희는 기도할 때 위선자들처럼 되지 말아라. 그들은 회당과 넓은 길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다. 진심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받을 것을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작은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드러내지 않으시는 너의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드러내지 않은 채 지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다.”
해설과 묵상:
하나님 신앙에 있어서 기도는 가장 중요한 영적 훈련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인간은 기도로써 다시 그분의 품을 찾습니다.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하나님을 떠나 육적인 존재로 전락한 인간은 기도로써 다시 영적인 존재로 회복됩니다. 하늘을 잃고 땅의 존재가 되어 버린 인간은 기도를 통해 다시 하늘을 얻습니다.
온 천하에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에 자신을 꺠우고 그분의 다스림에 자신을 조율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 중에 우리는 고백하기도 하고 간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부르짖기도 하고 때로는 찬양을 하기도 합니다. 침묵 가운데 머물러 있기도 하고, 뜨거운 마음을 말로써 쏟아 놓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 했습니다. 정해진 기도 시간이 되면 회당에서는 뿔나팔을 붑니다. 그 소리가 들리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잠시 일손을 놓고 그 자리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이 전통은 기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전통이 퇴색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심을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기도 시간에 맞추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서 있다가 뿔나팔 소리가 들리면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선 떠는 것이라고 규정하십니다. 그들이 기도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이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이므로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에게서 바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도할 때 작은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기도 드릴 때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존재이므로 작은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를 드리면 집중하기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골방 속에 머물러 있어도 마음은 시장터에 가 있을 수 있고, 시장터에 서 있어도 하나님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존재 전체를 묶어 하나님께 접속되려는 노력입니다. 따라서 다른 관심사로 인해 마음이 갈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과 연대입니다. 바른 기도는 시편 131편에 표현된 것처럼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은 안식과 평안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에 이를 때 저절로 찾아 드는 내적 변화입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화“(요 14:27)를 얻는 것이고, 바울 사도가 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롬 8:39)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해 “드러내지 않으시고 지켜 보시는 분”으로 묘사하십니다. 개역개정은 “은밀히 보시는 분”이라고 했고, 새번역은 “숨어서 보시는 분”이라고 했고, 새한글성경은 “비밀리에 보고 계시는 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알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고 알 수도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분을 제대로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일 누군가 하나님을 알았다고 장담한다면, 그가 섬기는 것은 우상일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행 17:28)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울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존재 전부를 감싸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입니다”(엡 4:6)라고 했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를 우리가 믿고 있다면, 우리가 그분에 대하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토록 크시고 높으시고 거룩하신 분이 덧없는 존재인 우리 하나 하나를 지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을만큼 놀라운 일입니다. 길바닥에 일렬로 줄을 지어 움직이고 있는 개미들은 제가 그들을 지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시고 관심하고 계시며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듭 “드러나지 않은 채 너희를 지켜 보시는 분”이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아도 우리는 그분 안에서 호흡하고 있고 그분의 사랑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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