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롬 6:1-14 은혜아래 있는 삶

새벽지기1 2023. 6. 7. 05:11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있음을 강조한 바울은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하여 변호를 합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있으니 은혜를 더 갖고자 죄의 자리에 거하고자 하는 생각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은혜받은 나 자신이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는데 은혜받기 위하여 죄의 자리에 서는 것은 가능할 수 없고 우스운 일입니다.

성도된 나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연합됨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받음입니다. 세례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아났음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그와 연합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입니다. 더 이상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하나님에 대하여 영원히 살아남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한 성도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에도 동참합니다. 또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난 성도는 죄의 지배아래 머물지 않습니다. 죄의 지배 아래 머물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죽음이 주인 노릇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죄가 아니라 은혜가 지배하면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삶을 사욕을 위하여 사용하는 옛사람의 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옛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모습인 사욕에 따라 죄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것은 사적 욕망 즉 사욕입니다. 이것은 불의의 병기로 사단의 졸개인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은혜의 지배에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삼위 하나님을 위하여 의의 병기로 드리는 일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짐을 지고, 서로 봉사하고 감사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일입니다.

이 훈련을 잘해야 백발이 면류관이 됩니다. 죄가 주인노릇하지 못하도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 시작은 은혜가 나의 주인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오늘도 죄의 지배가 아니라 은혜의 지배 안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의의 병기로 주님께 드리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