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송인선의 깨알

131,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라

새벽지기1 2022. 11. 4. 07:06

[기도/말씀]​

신실하신 하나님, 은혜로  생명의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은혜를 계수하고 재해석함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복 있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매순간 주님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의 은혜를 더하여 영원한 부활을 소망하게 하옵소서.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삼상23:13)

 

[배경/해석]

그일라를 구원한 다윗과 다윗의 공동체 육백명 가량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갑니다. 다윗이 기도할 때에 그일라가 다윗을 배반할 것을 하나님이 알려주셨습니다.

 

일어나

지체함 없이 신속하게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식솔까지 천명이 넘는 인원이 한숨과 슬픔으로 한탄하며 이동합니다. 그일라에게 배신당할 것이란 슬픔을 마음에 안고서 아픔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야곱도 슬픔과 상처의 자리 세겜에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여호수아도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요단을 건넜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상처와 고통의 자리에서 일어나렵니다.

 

떠나서

미련두지 말고, 원수 갚지 말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그일라, 그 상처의 자리에서 떠납니다. 다윗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신뢰의 관계, 구원의 관계가 틀어지면 “우리가 누구인데, 내가 누구인데!”라고 자기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죄의 본질인 “자기 중심성”에는 자기증명의 욕구가 담겨져 있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당할 사람이 아니다’ 라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자기 고백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내가 누군데! 라는 “자기 증명의 욕구”에서 떠나기가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요, 창조주 이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버리셨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해 12제자들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이런 관계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 육체적 고통까지 다 내려 놓았습니다. 40일 금식후 사탄이 자기 증명의 욕구를 부추깁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3)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 때에도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를 모욕하며 자기 증명의 욕구를 부추깁니다.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마27:40)

 

[묵상/분별]

이에 대해 예수님은 대응하지 않습니다. 인간들과 같이 흥분하지도 발버둥치지도 않으십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자신을 증명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지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가상칠언의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30)

 

자신의 욕망 자기 증명의 욕구 떠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묵상하고 침묵해야 합니다. 만일 다윗과 다윗의 공동체가 자기증명의 욕구로 그일라에 머물렀다면 엄청난 상처와 트라우마가 쓴 뿌리가 되어 그일라가 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일라의 쓴뿌리는 주변으로 뻗어나가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그들의 표정과 생각과 말을 통하여 폭언과 다툼과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요?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곳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옮겨 다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인 도피장소를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하여 계속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알려주시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많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유대인 6백만명의 학살이 있던 2 세계 대전중하나님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라는 그들의 원망어린 호소에도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사울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됩니다. 왕이란 직책과 리더쉽으로 그일라에 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점검하고 방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적이 다윗이었음으로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였습니다. 현실은 언제자 혹독한 고난이 동반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길(섭리)이 그 위에 임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납니다. 실제적인 삶 속에서 성도의 고난영적 성장을 이루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며, 죄의 불순물이 제거됩니다.

 

[적용/기도]

자기증명의 욕구에 따라 그일라에 묶이지 말게 하시며 떠나게 하옵소서. 

자기증명의 욕구를 발동시키는 사탄의 소리에 반응하지 말고

십자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침묵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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