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등경 위의 등불(막 4:21)

새벽지기1 2022. 10. 12. 06:50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막 4:21)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21-25절에 나오는 두 개의 말씀은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편집자가 이곳에 삽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1-20절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고, 26-32절은 자라나는 씨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에 등불과 헤아림이라는 말씀이 들어갔습니다. 신학비평 문제는 우리의 묵상에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오늘 본문은 고대 유대인들이 어떻게 방을 밝히며 살았는지를 알아야 우리 머리에 확 들어옵니다. 그들은 밤에 등불을 긴 다리가 달린 등경 위에 올려놓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등불의 원료로 올리브유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송진 같은 것을 사용했는지 제가 충분하게 조사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해도 등불이라고 해봐야 지금 우리가 볼 때 형편없는 것이었겠지요.

 

본문에 말이 나옵니다. 말은 곡식의 양을 재는 기구입니다. 한 홉들이, 또는 한 되들이 말들이 있었겠지요. 그들은 곡식의 십일조를 떼기 위해서 이 말을 방안에 두었다가 등불을 끌 때 이걸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불을 밝히려고 할 때 등불을 말 아래 둘 수는 없습니다. 평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누워 자는 평상 밑에 등불을 두지 않습니다.


신약학자들은 이 구절을 일종의 그림말(Bildwort)이라고 합니다. 그 상황이 우리에게 그림처럼 선명하게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부부와 아이 몇 명이 등불을 밝힌 방에서 오순도순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밥을 먹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집에 비해서 훨씬 어둠침침한 곳이겠지만 그곳에 평화가 있다면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작은 등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구원과 생명의 단초입니다. 그것을 말 아래에 넣어두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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