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인문학을 하나님께

피천득 : 기다림 / '하나님의 기다림이 우리를 살립니다'

새벽지기1 2022. 8. 29. 06:32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피천득 님의 시 「기다림」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의 기다림이 우리를 살립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다림

아빠는 유리창으로 /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
귓머리 모습을 더듬어 / 아빠는 너를 금방 찾아냈다 /
너는 선생님을 쳐다보고 / 웃고 있었다 /
아빠는 운동장에서 / 종 칠 때를 기다렸다 /

수 백명 아이들이 섞여 있어도, 뒷꼭지만 봐도 아빠는 금새 자식 놈을 알아 봅니다.

내 아이의 눈 빛, 손짓, 웃음 하나하나에 가슴이 환해지고 어깨가 펴지는 사람, 그의 이름은 ‘아빠’입니다.
아빠는 ‘어린 왕자’를 만나기 위해 운동장에서 종 칠 때를 기다립니다. 
수업하는 데 폐가 될 수가 있으니, 교실까지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 
가더라도 자식 놈 뒷머리밖에 못 볼 것을 알면서도, 발걸음은 자꾸만 교실을 향합니다.

조금 후에 집에서 보면 되는데 바보 짓을 합니다. 
그리하여 교실 뒷문 유리창에 살며시 붙어 교실을 들여다봅니다. 
선생님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자식놈이 그저 대견하기만 합니다. 
단박에 이름을 불러 보고 싶지만 참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물러나 운동장에서 자식을 기다립니다. 종이 칠 때까지. 
자식이 이런 마음을 알리도 없고 몰라줘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사랑이니까요.

 

강은교 시인은 이런 아버지를 ‘가장 큰 하늘’로 보았고, 그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등 뒤의 사랑! 등 뒤에서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는 사랑!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꽃처럼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학교에 간 아이들이 올 때를 기다리는 것,

군에 간 아들이 휴가 올 때를 기다리는 것,

시집간 딸이 처음 이바지를 해 가지고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 등,

수많은 기다림들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기다림은 사랑과 희망의 다른 이름.
“오늘이 그날이예요”
씨앗은 기다림을 끝내고 마침내 싹을 틔웁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기다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누가복음 15장의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기다리던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먼 발치에서 보이자 아버지는 달려갑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입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15:20b)

성공해서 돌아오는 아들은 환대를 받으며 집으로 당당히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아들은 다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날마다 문 앞에 나가 눈이 짓무르도록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아들이 보이자 ‘아직도 거리가 먼 데’ 아버지는 달려가 영접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기다리십니다.

방탕한 아들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있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면목이 없어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멀리서 서성일까 봐, 문 앞에 나가 기다리십니다. 
그 기다림이 우리를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