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에스겔서 8장: 예루살렘의 타락상

새벽지기1 2022. 8. 26. 06:48

 

해설:

첫 번째 환상을 본 날(1장 2절)로부터 약 1년 후, 에스겔은 또 다른 환상을 봅니다(1절). 환상 속에서 아랫도리는 불처럼 보이고 허리 위로는 금빛 광채를 발산하는 존재가 나타나 그의 머리채를 잡아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곳에는 질투의 우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발 강가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있었습니다(2-4절).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북쪽을 보라 하셔서 눈을 돌리니 제단으로 들어가는 문 어귀에 질투의 우상이 있었습니다(5절). 주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성전에서 역겨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찰나에 있다고 하십니다(6절). 

에스겔은 주님에게 이끌려 성전 뜰을 지나 어느 벽 앞에 섭니다. 벽에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에스겔에게 그 벽을 허물라고 하십니다. 그대로 했더니 문이 하나 나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7-9절). 들어가 보니 방의 벽에는 온갖 불결한 짐승들과 우상의 모양이 새겨져 있고,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의 지도 하에 일흔 명의 장로들이 이교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말하면서 이방 신을 예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0-12절).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에스겔을 이끌어 성전의 북문으로 갑니다. 거기에는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 신을 애도하고 있었습니다(13-14절). 담무스 신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섬기던 신입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여름 더위가 절정일 때 담무스 신이 죽는다고 믿고 애도 했는데, 유다 여인들이 그 의식을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안뜰로 가십니다.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 스물다섯 명의 제사장들이 성전을 등지고 태양에게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15-16절). 

 

주님께서는 이 모든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유다 백성을 심판할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하십니다(17-18절).

 

묵상:

당시 대다수 유대인들은 야훼 하나님을 유대인만의 민족신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국가와 국가의 싸움이 곧 그들이 섬기는 신의 싸움이라고 여겼습니다. 주전 597년에 바빌로니아의 공격을 받아 주권을 빼앗긴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의 신이 야훼 하나님을 압도한 까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흔 명의 장로들이 이교 예식을 행하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있지 않으시며, 주님께서 이 나라를 버리셨다”(12절)고 말한 이유도, 여인들이 성전 북문에서 담무스 신을 위해 애도하는 예식을 행한 것(14절)도 그런 이유입니다. 스물다섯 명의 제사장들이 성전을 등지고 태양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던 것(16절)도 야훼 하나님보다 태양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하나님에게 징계를 받고 있었는데,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다고 혹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패배 했다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된 것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참담한 비극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대인들이 고수 했던 민족적 신관을 깨뜨리고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눈 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다의 패망과 바빌로니아에서의 포로 생활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전면적으로 개조해 놓았습니다. 그들의 선민사상과 배타적 민족주의를 깨드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은 이 세상에 참된 신은 한 분 뿐이며, 그분은 유대 민족만의 신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자비와 긍휼에 한이 없는 분이지만, 때로 당신의 소유로 삼은 백성이라도 가차없이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민족에게 속했느냐가 아니라 그분에게 속한 사람답게 살고 있느냐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중에 율법을 다시 연구하고 역사를 다시 쓰게 된 동기였습니다. 인간은 고난을 통하지 않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임을 여기서 확인합니다. 우리는 모두 고난을 싫어하지만, 고난 속에 담긴 보화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이 아니고는 닿을 수 없는 경지가 있고, 고난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