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보 람 / 정창균 목사(합신교수)

새벽지기1 2021. 2. 11. 07:54

2005년 12월 8일

 

사람은 다른 짐승들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단순히 배가 부른 것만 가지고는 만족하며 살 수 없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사람이 살면서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된다”고 말씀하곤 하였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리다 보니 배부르게 한번 먹어보고, 따뜻한 구들장에 등 붙이고 맘 편하게 한번 자보는 것이 소원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찢어지는 가난으로 춥고 배고픈 설움이 한이 맺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람은 입에 들어가는 것만 가지고는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그 분
네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지긋지긋한 가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더 가난하게 살 것을 각오하면서 자식들을 학교 보내고 가르치는 일을 그렇게 힘썼던 것입니다. 사람은 사는 보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식 하나 잘 키우는 것이 부모 된 보람이라고 그 어른들은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보람을 위하여 그 가난과 그 고생을 선뜻 택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는 보람이 있어야 사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살아 온 보람이 있어야 하고, 앞을 내다보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의 보람이 내다보여야 합니다.

 

보람 중에 가장 큰 보람은 사람을 키우는 보람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사람을 키우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목사가 되자 그 소원이 더 절실하여졌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그것이 저의 목회 철학이 되었습니다. 사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돌보고 키우는 일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키우는 것은 애틋한 사랑과, 수시로 안부를 물어주는 깊은 관심과,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하는 자상함만으로는 부족하였습니다. 때로는 당장의 필요를 채워주고, 때로는 지금 감당할수 없는 것을 대신 부담해주고, 때로는 함께 맛있는 것을 사먹고, 따뜻한 것을 사 입히며 정을 나누기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로 돈이 있어야 되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이 일을 위하여 따로 돈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제 주위의 여러 사람이 여러 모습으로 그 돈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모두 합하면 꽤
많은 액수가 될 것입니다. 저의 작은 누님이 여러 해 전에 이 계좌에 매월 몇 만원씩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막동이 동생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으면서도 매월 그 돈을 넣어주었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강의를 하고 돈이 생기면 일정액을 떼어서 이 계좌에 넣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비자금 계좌입니다. 저는 이 비자금 계좌가 두둑히 모아져 있으면 신바람이 나서 누군가 등 뒤에서 한번 밀어주면 힘을 얻고 자라 갈 사람을 두리번거리며 찾습니다.

 

서너 주 전에는 어느 교인이 주더라며 아내가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열어보니 만 원짜리 지폐가 상당히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왠일인가 하여 봉투 앞뒤를 다시 보았습니다. 봉투 앞면에 또박또박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재량껏 사용해주십시요.” 알고보니 그 분은 이 돈을 벌기 위하여 한 달 동안 막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였다 하였습니다.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그분은 그런 힘든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처지에 있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5-6개월 전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막노동을 하고 나니, 더 이상 했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그만두었고, 그렇게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제게 전해온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나가서 떠온 물을 받아들고 세 용사의 피와 같은 물이라며 감격 속에 그냥 여호와 하나님께 부어드리던 다윗을 생각하며, 조금 더 모아지면 정말 값있게 누군가를 위하여 그분의 이름으로 이 돈을 쓰려고 보물 상자에 넣듯이 저의 비자금 계좌에 넣어두었습니다.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감동이 통하는 사람과 같이 지낸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고난과 환난을 무릅쓰면서도,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사람 하나 키워보려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정성을 쏟아 부었던 사도 바울이 여러 해 후에 놀랍게 믿음이 커버린 그들의 모습을 전해 들으며 그렇게 감격스러워 했던 모습을 저는 자주자주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마치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는 소년처럼 저는 바울의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 것입니다.


“당신들은 우리 주님이 오실 때에 그분 앞에서 나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스런 면류관입니다”(살전 2:19-20). 당신
들은 나의 보람! 바울은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르르- 바울의 얼굴을 흘러내리는 보람과 감격의 눈물을 눈에 선하게 봅니다. 보람 중에 가장 큰 보람은 사람 키우는 보람입니다. 교회들이, 그리고 신자들이 다른 일 보다도 사람을 키우는 일에 더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