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8일
장로는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가 1978년 런던에서 한인교회를 개척한지 얼마 안 되어 한국에서 장로님 한 분이 해외근무 차 런던에 오셨다. 그 장로님은 교회 재정 상태를 보시고는 걱정하셨다. 특히 목사의 사례금이 턱없이 적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장로님의 제의로 인상된 사례금을 받고 행복해 했던 적이 있다. 목사와 장로들과의 관계는 재정문제로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장로들은 교회 살림을 도맡아 하는데 특히 목사에 대한 대우를 잘 해드리는
것을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는 것 같다. 타작마당에서 낱알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가끔 사례금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쪼들려 사는 사모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불만을 목사인 남편에게만 내놓고 터트린다. 그러나 남편은 별 반응을 안 보인다. 그래서 매년 말 교회 예산을 세울 때가 되면 사모들의 기도가 더 뜨거워지는가 보다.
어떤 성도들은 목회자 생활 수준이 낮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목사는 성직자이기 때문에 평신도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모는 세탁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든지, 사모가 쥐 잡아 먹은 것처럼 입술 화장을 하고 다니면 덕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목사는 고행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목회자의 고행은 가족의 고행을 뜻한다.) 평신도들은 믿음이 연약해서 세상 흙탕물에서 덤벙대지만 성직자는 성직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신도는 타락할 수 있지만 성직자까지 타락하면 평신도들은 누구를 믿고 살 것인가?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하나는 목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타락할 수 있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책임을 목사에게만 지움으로써 평신도들 자신은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서양 중세교회에 만연해 있었다. 신부는 하나님 앞에서 평신도의 죄를 사해주는 중보자 역할을 하는 제사장적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부는 거룩해야 했고 또 거룩하게 보여야 했다. 사실 신부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주중에는 어떻게 살던 지간에 주일에는 신부가 거룩하게 단장한 제단 앞에 화려한 의상을 걸쳐 입고 서 있으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할 만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렇듯 오늘날에도 교회는 목사를 성스러운 상자 안에 가두어 놓는다. 물론 목사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할 책임이 성도와 장로에게 있다. 성도들이 기도와 격려와 필요한 물질로 후원하는 것은 목회자에게 꼭 필요하다. 설교자로 유명했던 스펄젼 목사를 찾아온 손님이 물었다. “목사님이 설교로 유명해 진 데는 어떤 비밀이 있습니까?” 스펄젼 목사는 그를 교회 지하 기도실로 인도했다. 거기에는 성도들이 모여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스펄젼 목사는 “여기가 우리 교회의 파워하우스이지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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