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함께하는 인생은
위기 속에 기회가 보이고, 새로운 기회가 열립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우리의 계획과 준비를 사용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계획과 비전을 품고 기도 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에게 질문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그 많은 사역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감당하실 수 있었습니까?”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오직 기도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움직이도록 했을 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로 사람과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능력의 통로입니다. 느헤미야가 꿈꾸고 있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해서 예루살렘 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단지 성벽을 다시 쌓는 일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했습니다.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사람들이 삶의 우선권을 하나님께 두지 못하고 있었고, 성벽이 방치된 상태로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식은 가슴에 다시 불을 일으켜서 함께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공격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보다 어려운 것은 지금 느헤미야가 묶여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으로서 왕의 허락이 없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은 왕의 허락을 받는 것입니다. 왕의 은총을 입어야 이 일을 할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통해서 이 일을 이루신다면 왕이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되고, 왕으로부터 도움을 얻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느헤미야와 아닥사스다 왕의 대화를 통해 보여줍니다.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역사의 새벽이 찾아왔습니다.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던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어떤 태도와 자세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을 통해 아닥사스다 왕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요? 느헤미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받는 유혹은 당장 그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처참한 형편을 듣고 수일 동안 슬퍼하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수일 동안의 간절한 기도 직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즉시 왕에게 달려가 간청하지도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자
신의 직분에 합당한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뿐입니다. 참된 지도자의 올바른 태도는 기도가 응답 될 때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현실에 충실하고,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네 성벽에 파수꾼을 세워 두었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잠잠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를 일깨워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지 말고 그분이 예루살렘을 세우시
고 세상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실 때까지 여호와께서 쉬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사62:6~7).
여호와께서 쉬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귀찮게 해드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실 만큼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간절함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때는 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월’ 입니다. 니산월을 오늘날 월력으로 환산하면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까지입니다. 우리식으로는 봄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
렘의 형편에 관한 소식을 듣고 기도를 시작한 때가 아닥사스다 왕 20년 ‘ 기슬월’ 입니다. 기슬월은 오늘날 월력으로 11월 중순에서 12월 중순입니다. 겨울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월에서 니산월까지는 약 4개월 정도가 흐른 것입니다. 이 4개월 동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 때에도 계속 기도합니다. 느헤미야가 4개월 동안 계속 기도했다는 증거는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마음을 발견할 만큼 근심과 슬픔이 여전히 남아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어떤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슬픔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 혹은 그 사람을 위한 중보자로 부르셨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그 일을 위하여 그 사람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우리에게는 어떤 슬픔이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계속 되는 슬픔이 남아 있습니까? 이 시대를 향한, 다음 세대를 향한, 믿지 않는 영혼을 향한, 교회를 향한 슬픔이 계속 남아 있습니까? 느헤미야의 슬픔은 곧 잊어버리는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지속되는 슬픔이었습니다. 그 슬픔 속에서 느헤미야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응답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기다리게 하십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갖도록 하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시간이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기다림 속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시는 겁니다. 또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신뢰와 믿음을 확인하
고 싶으신 것입니다. 어느 가나안 여인이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계속 소리를 지르고,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는 그 여인의 기도에 예수님은 침묵하셨고 또 거절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신뢰를 보였고, 또 소원의 진정성을 확인해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가라. 네 딸이 치유되었다. 고침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바로 고쳐 줄 수 있었는데 왜 침묵하고 거절하고 시간을 끄셨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그 기도가 응답되기를 원하는 진정성을 확인하는 기간을 통하여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4개월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슬픔을 품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4개월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분별했습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롭게
“왕이 내게 물었습니다. ‘ 네가 아프지도 않은데 네 안색이 왜 그리 슬퍼 보이느냐? 마음에 근심이 있는 게 분명하구나.’ 나는 무척 두려웠지만 왕에게 말했습니다. ‘ 왕께서는 만수무강하옵소서! 제 조상들이 묻혀 있는 성이 폐허가 됐고 그 성문들이 불에 타 허물어졌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2~3절).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안색을 살피
고 근심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느헤미야에게 깊은 관심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술 관원의 안색을 통해서 자신의 안전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만일 술 관원의 안색에 어떤 감정적인 이상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왕은 늘 술 관원의 안색을 살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일부러 슬픈 기색을 보였을 리는 없습니다. 느헤
미야는 그동안 왕 앞에서는 그저 행복하고 기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직무였기 때문에 최대한 노력했을 것입니다. 당시는 술 관원이 왕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감정을 표현한다면 죽을 수도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안색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마음에 슬픔과 근심이 가득할 때는 아무리 좋은 표정을 지어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때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감정을 읽었습니다. 느헤미야에게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무척 두려웠다”고말했습니다. 죽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닥사스다 왕의 발견은 하나님 은혜로운 손길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예상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느헤미야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시작된 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 이 순간은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두려운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큰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 아닌지 낙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는 것을 분별했을 것입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이 기회를 놓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위기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기회라는 것을 분별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회를 분별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슬픔의 이유를 말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고백했습니다. 슬픔의 이유를 지혜롭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둘기처
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순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 순전한 예배의 마음, 그 순전함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과 대화할 때 지혜로워야 합니다. 뱀은 위험을 피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뱀은 위협이 되는 상황이 있으면 매우 빠르게 피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영
혼들은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동시에 뱀처럼 지혜로워야 합니다. 불필요한 위험을 피하는 겁니다.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목숨을 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헛된 희생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고난을 받지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고난을 만들어 내고 그 고난을 받으면서 순교자라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비둘기처럼 순결했고 뱀처럼 지혜로웠습니다.
매순간 하나님께 기도하는 태도
“왕이 내게 물었습니다.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때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 왕께
서 기뻐하시고 종이 왕께 은총을 입었다면 왕께서는 저를 조상들이 묻혀 있는 유다 땅으로 보내 그 성을 다시 건축하
게 하소서’”(4~5절). 왕이 느헤미야의 간청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습니다. 왕은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조지 모리슨 목사님은 이런 기도를 ‘ 전보기도’ 라고 하고, 어떤 분은 ‘ 화살기도’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에게 대답하기 전이나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개월 동안 계속 기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순간 세상의 왕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만왕의 왕이신 하늘의 하나님께 간청한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매순간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때 왕 옆에 왕비도 앉아 있었는데 왕이 내게 물었습니다. ‘ 그렇게 다녀오려면 얼마나 걸리겠느냐? 언제쯤 돌아오겠느냐?’ 왕이 나를 보내기를 허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왕에게 기한을 정해 말했습니다”(6절). 왕은 느헤미야의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완전히 갈 수는 없었습니다. 잠언 21장 1절 말씀을 보면 이 상황을 설명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
히브리어로는 ‘ 봇물’ 이라는 뜻의 ‘ 보’ 가 가장 먼저 시작하는데,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서 농지로 물을 대는 관개
용 수로를 말합니다. 이 수로로 물이 지나가듯이 왕의 마음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
고, 이 세상 철학과 이념에만 휩쓸려 있는 왕이라 할지라도 그 왕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느헤
미야가 두 가지를 요청합니다. 하나는 자신이 직접 유대의 감독으로 파견되어 가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모든 일
을 위하여 필요한 권한과 재료들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내가 다시 왕에게 말했습니다. ‘ 만약 왕께서 기뻐하신다
면 제가 유다에 도착할 때까지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유프라테스 강 건너 총독들에게 보여 줄 친서를 써 주시겠습
니까? 그리고 왕의 산림 감독 아삽에게 친서를 내리셔서 성전 옆 성문과 성벽과 제가 살게 될 집의 들보 재목을 내주도
록 해 주십시오.’ 왕은 내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내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내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7~8절).
느헤미야는 4개월 동안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계획과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
은 우리의 계획과 준비를 사용하십니다. 느헤미야가 왕의 마음이 움직여졌을 때 아무런 계획이 없었더라면 구체적으
로 요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간절한 기도에는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함께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
하며 계획했고, 계획하며 기도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도록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의 일반적인 법칙은 계획을 통해 일하십니다. 인간적인 꾀와 욕심에 근거한 계획을 자꾸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
무 계획도 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믿음의 기도 속에 있을 때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을 때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 계획, 실력,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불신이 아니라 신앙의 표현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잠언 16장 9절 말씀을 종종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 살아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의 계획을 이용하셔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운 계획이 안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또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아무 계획이 없다는 것은 게으른 것일 수 있
습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신의 요구 사항을 말할 때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가 나타납니다. 기회가 왔을 때 부랴부랴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에게 응답하십니다.
열쇠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은 우리가 구하고 계획한 것에서 넘치도록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은 느헤미야가 구하고 원하는 것에 넘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가 요
청한 군대 외에도 군대 장관과 마병, 군사력까지 더해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
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역사하실 분이십니다”(엡 3:20).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은 우리가 계획한 것 이상을 공급하십니다. 결국 느헤미야의 성공의 열쇠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 모든 일을 이루고 고백합니다.
“내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내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위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늘 함께 하고 계십니다. 코로나19 재난의 한복판에
서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손길로 재난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
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은 온통 위기처럼 보입니다. 상점의 문이 닫히고, 예배당에 성도들이 참여할 수 없는 원통함과
안타까움과 위기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함께하는 인생은 위기 속에 기회가 보이고, 새로운 기회
가 열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은 우리의 계획과 준비를 사용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사명으로 세워 주신다면 감당할 수 있는 계획과 비전을 품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넘치도록 역사해 주시는 분이십
니다. 은혜로운 손길로 함께 하십니다. 아무리 완악한 심령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함께하시면 변
화됩니다. 태산같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도 하나님의 은혜로 손길이 함께하면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필요한 때입니다. 코로나19 재난 한복판에서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느헤미야가 4개월 동안 슬픔을 품고 계
속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가 이 참담한 현실을 품고 슬픔 속에서 계속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이 모든
상황을 변화시킬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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