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비전과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 1:1~11)

새벽지기1 2020. 7. 30. 06:15

느헤미야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 조국에 대한 생각, 성전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조급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급한 만큼 목숨을 걸고 기도하십시오.

그때 우리나라도 살고 여러분 가정도 살고 여러분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느헤미야서 강해가 시작됩니다. 느헤미야서 강해의 큰 주제는 ‘52일 동안의 기적’입니다. 1장의 말씀은 비전과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은 온누리교회를 향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시절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그는 귀환하기 전에 현실의 문제를 봅니다. 성전이 훼파되고, 성벽이 다 무너지고, 성문은 불에 타서 아주 엉망진창이 된 예루살렘을 보게 됩니다. 성문이 무너진 것은 바벨론 포로시절이었는데, 142년 동안 허물어진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진 하나님의 집, 도적질 당한 성전의 기물, 허물어진 성벽을 매일 지나가다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본문의 상황입니다. 느헤미야가 성전 건축을 하려고 한 때는 주전 440년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2,500년 전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지금 오늘 한국이 당면한 문제, 오늘날 우리 교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습니다.

 

실력 있는 믿음의 사람

 

먼저 1~2절을 읽겠습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르 월 내가 수산 성에 있을 때에 내 형제 가운데 하나니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유다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그곳에 남아 있는 유다 사람들의 안부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습니다.”느헤미야는 유대인인데, 바벨론 포로시절에 그의 할아버지가 포로로 잡혀간 것 같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이민 3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잡혀간 페르시아에서 아닥사스다왕의 술 맡은 관원이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은 왕과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말동무가 되는 관계입니다. 당시에는 국정을 논하고 여러 가지 자문을 구하고 소식을 전하는 자가 아니면 술 맡은 관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민 3세로서 그런 자리에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력이 있었고, 인격적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었고, 왕의 마음에 드는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온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가 얼마나 탁월했으면 그런 자리에까지 올라갔겠습니까. 실력이 있으면 대개 믿음이 적습니다. 믿음이 아주 좋아 보이는 사람은 실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을 헤쳐 나가는 능력과 기술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은 너무 바빠서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실력도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애국심

 

느헤미야에게는 남다른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애국심을 갖고 있습니다. 모두 자기나라를 사랑하고 자기나라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애국심과 정권력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갖기 원하고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고 장관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애국심이 아닙니다. 이민 3세였던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도 자기 조국을 향한 애국심이 남달랐습니다. 수산성은 이스라엘로부터 1,20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렇게 멀리 있었지만 느헤미야의 마음속에는 조국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성전이 다 무너지고 성문은 불타고 성벽은 다 훼파되고 수많은 사람들은 조롱하면서 그 곁을 지나갈 때 느헤미야의 마음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내게 말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그 지방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지금 큰 고난과 수모를 당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고 그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자기 조국이 그렇게 파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전쟁이 났을 때 미국의 대학에서 이스라엘 사람과 아랍 사람들이 동시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갔고 아랍 사람들은 전부 숨기 위해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과 수모를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울고 말았습니다. 그는 몇 날 며칠 동안 슬픔에 잠긴 채 금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4절). 여러분, 눈물과 통곡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통곡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생각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한 사람만이 통곡할 수 있습니다. 가슴 찢어지게 애통한 사람만이 통곡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를 가리켜 감격이 없는 메마른 시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현실에 얽매여 순간순간 그냥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울 일도 없고 금식할 일도 없습니다. 며칠 밤을 새면서 통곡할 일도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든지, 사랑하는 배우자가 죽었다면 그렇게 통곡합니다. 그것도 며칠 울다 맙니다. 우리가 이렇게 눈물도 없고 통곡도 없는 감정이 메마른 시대에 사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이기적이고 물질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경쟁하고 싸우고 탐욕과 욕심에 얽매여 있고 분노하고 미워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도대체 왜 내가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조국을 위해 통곡하는 마음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3차 귀환을 했는데 1차 귀환 때 성전을 재건하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반대에 부딪히고, 모함에 말려듭니다. 성전을 재건하려는 이들을 모함하는 사람들이 일어났고 왕에게 편지를 써서 결국 성전 건축이 중단됩니다. 이스라엘 성벽과 성문이 무너진 지 벌써 140년이 지난 것입니다. 이방인은 수없이 쳐들어왔고 약탈당했고 성전과 성벽은 날이 갈수록 더 피폐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통곡했습니다. 만약에 자기 민족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에만 만족했다면 그렇게 통곡할 필요도 없고 금식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 조국에 대한 생각, 성전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나 그 생각을 버려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조국에 대한 불타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안중근 의사처럼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불행은 데모하는 사람은 많고 이념은 있지만 진정한 애국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통곡하고 금식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지러운 시국 앞에 분노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짜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적습니다.

 

조급할수록 기도하라

 

비전의 사람 느헤미야는 이때 기도했습니다. 울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4절). 아닥사스다왕 20년 기슬르월은 11월, 12월을 의미합니다(1절). 느헤미야가 이 소식을 들은 것이 11월과 12월 사이였는데, 그는 기도의 응답이 올 때까지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것이 니산월이었습니다(느 2:1). 니산월은 3월, 4월입니다. 4개월 정도 지난 후에 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첫 번째 특징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사람에게 찾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울면서 통곡하면서 하나님 앞에 그 슬픔을 가진 채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응답은 즉시 오지 않습니다. 4개월이 지나서 올 수도 있고, 40개월이 지나서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당장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조급할수록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당장 나를 구해줄 사람을 찾아가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현실이 눈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방법을 다 써보고서도 안되면 마지막으로 새벽예배에 나옵니다. 우리는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급할수록 먼저 기도하십시오.

 

죄를 고백하는 기도

 

5절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과 맺은 사랑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세 번째,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과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내 기도가 너무 급해 내 이야기부터 꺼내놓는데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크고 두려운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랑의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6절입니다.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주의 종이 밤낮으로 주 앞에 기도하니 주께서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떠서 이 기도를 들으소서. 저와 제 조상의 집을 비롯해 우리 이스라엘 족속이 주님을 거역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네 번째,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합니다. 우리는 급하면 급한 이야기를 하지 자기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우리 민족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원인은 무엇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찾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나와 내조상이 저지른 죄악을 회개하는 기도를 합니다. 7절입니다. “우리가 주께 매우 악하게 굴었습니다.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주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우리가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불순종 했고, 모세에게 주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이 현실적으로 당하는 문제가 조상의 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대신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 조상이 지은 죄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느헤미야의 기도와 우리 기도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순종하면 다시 모아주시는 하나님

 

8절, 9절입니다.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너희가 만약 죄를 지으면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 버릴 것이고 만약 너희가 내게 돌아와 내 계명을 지키면 너희 포로 된 사람들이 하늘 끝에 있더라도 내가 그들을 거기에서부터 불러 모아 내 이름을 위해 선택해 놓은 곳으로 데려올 것이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다섯 번째,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회상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의 요점은 우리 조상들의 죄악, 우리의 죄악 때문에 우리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7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고 수모를 겪었는데 이제라도 순종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모두 불러 모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느헤미야는 그 약속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약점을 붙잡고 “하나님 살려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구원해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부르짖으면서 약속의 말씀을 꽉 붙잡으십시오. 느헤미야는 매를 좀 맞더라도 순종 안하면 흩어지고 순종하면 다시 모아주신다는 말씀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10절입니다. “그들은 주께서 주의 큰 능력과 주의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들입니다.” 아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죄를 묻지 않고 감싸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인 것처럼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느헤미야처럼 “우리 조상의 죄도 있고 내 죄도 있고 허물도 있고 내가 이렇게 잘못 살아왔지만 그것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 나를 긍휼이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떼쓰는 기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전을 기도로 승화시켜라

 

11절입니다. “‘주여, 이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주의 종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오늘 주의 종이 이 사람 앞에서 은총을 입고 잘되게 하소서.’ 그때 나는 왕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첫 번째, 느헤미야가 주의 은총을 요구합니다. 느헤미야는 “목숨을 걸고 하는 기도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지나간 나의 삶을 회개하오니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4개월 동안 기도한 것입니다. 마지막 더 중요한 말은 “그때 나는 왕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사람이었습니다”라는 느헤미야의 고백입니다. 이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왕에게 술 따르는 것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좀 더 깊이 해석하면 “왕의 마음을 변화시켜주셔서 나로 하여금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성벽을 다시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못되게 굴면 남편과 싸우지 마시고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남편을 변화시킵니다.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느헤미야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전이 훼파된 성벽과 불탄 성문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열정입니다. 그저 밥 한 끼 굶은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비전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비전을 기도로 승화시킨 사람입니다. 여러분, 지금 조급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급한 만큼 목숨을 걸고 기도하십시오. 그때 우리나라도 살고 여러분 가정도 살고 여러분도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느헤미야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느헤미야 강해를 통해서 아버지의 비전을 발견하게 해 주시고,

기도를 발견하게 해주시고,

리더십을 발견하게 해주시고,

공동체를 발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