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5)

새벽지기1 2020. 7. 14. 07:00

우리의 입술은 예수를 전하는 데만 사용해야 합니다. 다른 말을 할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술에 예수님의 말씀, 성경 말씀, 성령의 말로 가득 차게 해야 합니다. 진짜는 겸손합니다. 진짜는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절망시키고 우리 사회를 혼돈스럽게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십계명을 설교하면 할수록 십계명은 옛날 계명이 아니고 우리 시대에 아주 적절한 말씀임을 느낍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질을 꿰뚫는 방법론을 찾는 게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 우리 삶의 기초를 세우는 아주 현대적이고 실제적인 계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계명은 시대와 동떨어진 말씀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의 기초로 삼아야 될 말씀입니다.  

 

모든 악의 시작은 ‘거짓말’

 

오늘 아홉 번째 계명은 간단합니다.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언, 위증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하고 옳은 말이기 때문에 이 말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가볍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거짓말이 우리 사회와 개인에게 주는 나쁜 영향력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도둑질이 다른 사람의 물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훔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거짓말은 다른 사람의 인격과 정신과 마음을 훔치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뒤집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사회의 이성과 상식에 안 맞는 얘기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분석해 보면 진리와 빛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너무 일상적으로 거짓말을 많이 하고,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처럼 쉽게 받아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겪는 우리의 내면 안에 있는 모든 악의 시작은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거짓말을 너무나 쉽게 합니다. 가장 좋은 핑계가 선한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거짓말이 잘못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좋은 의미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변명까지 붙여서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 정도쯤은 괜찮은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거짓말은 두 가지 관계를 깨뜨립니다. 첫 번째, 하나님과의 하나님을 깨드립니다. 두 번째,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계를 깨뜨린다는 것은 신뢰를 깨뜨린다는 말입니다. 서로 신뢰가 깨지는 사회가 되면 만인은 만인에 대해서 적이 되고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든 사탄 인류 최초의 거짓말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 인간인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의 모든 것을 다 임의로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정령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사탄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말씀은 거짓말이야. 죽지 않아. 네가 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되니까 먹지 말라고 한 것이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듯한 이유로 의심하게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로 부인하게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다 이해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이해시켜 주는 것만큼 이해하고, 보여주시는 것만큼 보여주고, 들려주시는 것만큼 들려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해가 다 안 된다하더라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나보다 크신 분입니다. 나보다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내 손바닥에 쥐고 하나님을 내 마음 안에 가둬 놀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인간에게 의심이 먹히면 사탄은 그대로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렸다면서 학문적으로 공격하고 이성적으로 공격합니다. 또 우리 삶 가운데 고난이 오면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면 잘못된 비전을 줍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건강해진다. 안 죽는다’고 우리를 속입니다. 잘못된 비전과 잘못된 환상은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만든 환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신앙은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상식입니다. 신성은 초자연적이지만 자연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영적 통찰력을 가져라 사탄은 우리에게 늘 진리에 대한 의심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낚시를 채듯이 그럴듯한 미끼를 던져서 우리가 거짓을 덥석 물도록 합니다. 또 사탄은 우리를 거짓된 환상으로 유혹합니다. 잘못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설교할 때 좋아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편한 것입니다. 흔히 은혜 받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생각하고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설교든지 우리의 생각과 맞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아야 합니다. 고통이 따른다할지라도 우리는 진리를 붙잡아야지 나를 기쁘게 해 주고 즐겁게 해 주는 비진리를 붙잡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영적 통찰력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말씀을 한번 들어보면 그 말씀이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를 순간적으로 눈치 채는 은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창세기 3장 4~5절을 읽겠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려서 너희가 선과 악을 아시는 하나님처럼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과 사탄은 하나님만이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관리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악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악에게 접근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지 말라는 것이 더 먹음직하게 보이는 것처럼, 하지 말라는 것은 꼭 하고 싶어합니다. 그게 인간의 죄성입니다. 부모가 하지 말라면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칼을 맡기겠습니까. 칼을 다룰 수 있는 성인이 됐을 때 칼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들이 칼 가지고 논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그 칼에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죽음과 절망과 좌절의 거짓말

 

태초에 하나님은 빛을 만드셨습니다. 이 빛은 사람들에게 비춰지자 빛은 어두움을 구분해 놓습니다. 사람들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 어둠 속에서 합니다. 빛이 있으면 거짓말을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빛에는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빛이 가득 차 있으면 빛의 말을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어둠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참말과 거짓말이 대비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거짓증언을 하게 됩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생명과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에는 죽음과 절망과 좌절이 있을 뿐입니다. 거짓말은 우리를 진리에게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계속해서 더 깊은 거짓말로 이끌어갑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우리의 양심을 흔들어놓은 것은 참말이 아니고 거짓말입니다. 그럴 듯한 거짓말입니다. 어떤 때는 거짓말이 참말보다 더 참말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이라는 말를 정말 좋아합니다. 이단일수록 자기가 진짜라고 우깁니다. 진짜는 겸손합니다. 진짜는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절망시키고 우리 사회를 혼돈스럽게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좋습니다. 내가 실수했으면 실수했다고 말하는 게 좋습니다. 그게 정직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 그런 사람일수록 자존심이 아주 셉니다. 자존심은 자기를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자기를 존경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격과 양심은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45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버지인 마귀에게 속해 있고 너희는 너희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진리 안에 서지 못한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기 본성을 드러낸다.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 여러분이 거짓말을 하게 되면 마귀가 들어오는 길을 열어주게 됩니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거짓말을 한참 하면 진짜같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과장할 뿐아니라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얘기합니다. 모든 사기꾼은 거짓말에 능숙합니다.  거짓과 유사한 속임수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착한 사람, 선한 사람 소금과 빛과 같은 사람은 사회가 환영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할 때 동조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합니다. 빛이 없으면, 진리가 없으면 어둠이 들어오게 되고, 어둠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자라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5장 19절을 읽겠습니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위증, 비방이 나온다.” 이 말씀에 나오는 대부분이 단어는 거의 십계명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러한 모든 말과 행위는 사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빛을 거부했을 때, 진리를 거부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진리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진리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옵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어둠이 떠나게 됩니다. 어둠이 떠나면 거짓말을 안 하는 인격이 됩니다. 내 마음속에 어둠을 제거하고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영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거짓말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 내 안에 있는 어둠의 세력을 쫓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선에는 예민해야 하고, 악에는 둔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거짓의 아비인 사탄의 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두 번째, 거짓말과 유사한 단어를 안 써야 합니다. 처음에는 거짓말 안하다가 비슷한 말을 쓰면서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 비슷한 말은 바로 ‘고발’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얼마나 많이 고발했습니까. 나중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까지 “예수를 죽이시오! 예수를 죽이시오!”라고 외쳤습니다. 또 ‘속임수’가 있습니다. 살짝 바꿔치기를 한다든지, 새치기를 한다든지 하는 것도 속임수입니다. ‘위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이 아닌데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첨’도 하지 마십시오. 남에게 아첨하는 것도 거짓말의 시작입니다. ‘폭력적 언어’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 주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선의의 거짓말’도 하지 마십시오. 세 번째, 거짓의 영을 쫓아야 됩니다.  

 

생명의 언어

 

여러분, 생명의 언어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내가 손해를 볼지라도 진실을 말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마가복음 16장 17, 18절을 읽겠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다.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여러분 모두 성령이 주시는 새 방언을 말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거짓말이 사라집니다. 절망하는 자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말, 병든 자를 건강하게 하는 말, 세상을 살리는 말을 하십시오. 예수님의 입에는 욕이 없었습니다. 불평과 원망도 없었습니다. 그는 때리는 대로 맞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잠잠한 양같이 그냥 끌려갔습니다. 예수님의 입에는 험한 말이 없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모함하는 사람 앞에서도 변명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하셨습니다. 이사야 50장 4절을 읽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가르치는 혀를 주시고 어떻게 하면 지친 사람을 말로 되살릴 수 있는지 알게 하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깨워 주셔서 마치 제자를 대하듯 들려주신다.”

우리의 혀는 학자의 혀, 생명을 살리는 혀, 진실을 말하는 혀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지친 사람을 말로 위로하고 되살릴 수 있을까요? 아침마다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입술

 

성령 충만한 입술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양선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은 이런 언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이런 언어들이 정제되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전하고, 말씀을 전하고, 성령을 전하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도박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마약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도둑질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사탄의 영이 흐릅니다. 그런 곳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은 예수를 전하는 데만 사용해야 합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임했을 때 다락방에 성령의 열기로 가득 차니까 사람들이 방 안에 있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당신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다른 말을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술에 예수님의 말씀, 성경 말씀, 성령의 말로 가득 차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힘을 주고 용기를 주지만 어떤 사람은 가까스로 가졌던 용기마저 잃게 합니다. 여러분을 좌절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용기를 잃어버리게 하고 남을 미워하고 분노하게 하는 사람은 아예 만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격이 더러워지고 망가지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읽겠습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성령의 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복음을 전하는 말, 예수를 전하는 말이 여러분의 입술에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한 주간 동안도 성령 충만한 언어, 살리는 언어, 생명의 언어를 사용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이 다 복 받고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이 용기를 얻고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는 말을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