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축복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사야서 59장 1절~8절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명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도록 정곡을 찔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를 지적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잘못과 허물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메시지입니다. 저는 이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어떤 죄를 지적하실 때, 우리 민족, 우리 교회의 허물과 실수를 지적하실 때 그것을 거부하거나 변명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죄를 지적하시면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허물이요 실수요 잘못입니다.”라고 인정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죄를 인정하는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죄의 결과와 죄의 원인을 인정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정한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공의는 우리에게서 멀고 정의는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빛을 기다리지만 보라, 암흑뿐이다. 밝기만을 기다리지만 어둠 속을 걸어 다니고 있다.”(9절) 첫째, 흑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픈데도 아픈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패했는데도 실패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부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빛이 아니고 어둠이다. 어둠속에서 비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공의가 멀리 있고, 정의가 미치지 못하며, 흑암과 죽음만이 가득한 현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눈먼 사람처럼 벽을 짚으며 다니고 눈이 없는 사람처럼 손의 감각만으로 길을 더듬으며 다닌다. 대낮에도 황혼 때처럼 헛디뎌 넘어지고 건강한 사람 같아 보여도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10절)
둘째, 소경입니다. 10절을 보면 죄를 지은 사람의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벽을 짚고 다니고, 대낮에도 저녁처럼 헛디뎌 넘어지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같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처럼 보여도 이미 죽은 시체나 다름없는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감추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인정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은혜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감추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백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습니다. 고백은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줍니다.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구슬프게 울면서 공의를 기다리지만 찾을 수 없고 구원을 기다리지만 우리에게서 멀어져만 간다.”(11절)
셋째, 비참함입니다. 11절을 보면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구슬프게 울면서 공의를 기다리지만 찾을 수 없고, 구원을 기다리지만 멀어져만 간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상처받은 곰처럼 울부짖고, 집을 잃은 비둘기처럼 슬프게 울지만 공의와 구원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출발점으로 돌아오다
여러분은 생각하지 않았던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었을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얼굴을 찌푸리고 인상을 쓰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가운데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왜 이런 결과가 왔지?’하며 원인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죄악의 결과를 인정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원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황당하다, 이런 결과는 말도 안된다.’라며 거부했지만 그 비참한 결과 앞에서 이유를 가만히 묵상합니다. 12절이 그 묵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서 저지른 우리의 죄악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허물이 우리를 고발합니다. 우리의 죄가 아직 우리에게 있으니 우리의 사악함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12절) 처음에는 죄가 없다고 막 우겼지만 가만히 묵상해 보니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습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 앞에서 저지른 죄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우리가 고발합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에게 아직 있으니 우리의 사악함을 인정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죄의 원인 세 가지를 묵상합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거역하고 배반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뒤에서 협잡과 반란을 의논했고 마음에 거짓말을 품었고 또 중얼거렸습니다.”(13절)
첫째, 여호와를 거역하고 배반한 것입니다. 그전에는 ‘하나님께서 나한테 너무하신다.’고 생각했는데 비참한 결과 앞에서 과거를 묵상해보니 하나님께 잘못한 일이 떠오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했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조롱했습니다. 뒤에서 하나님에 대해 수군거렸습니다. ‘하나님보다 내 주먹을 믿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마치 개처럼 취급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뒤에서 협잡과 음모를 꾸미고 반란을 음모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의는 뒤로 제쳐 두고 정의는 저 멀리 멀어졌습니다. 성실이 길바닥에서 비틀거리고 있으니 정직이 들어올 수도 없습니다.”(14절)
둘째, 잘못된 사회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며 욕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내가 아닙니까.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잘못된 것을 그대로 인정하니 공의는 뒤로 제쳐 두고 저 멀리 멀어졌고, 성실은 길바닥에서 비틀거리고 있고, 정직은 들어올 틈이 없게된 것이 아닙니까. 내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성실이 없어지니 오히려 악을 피하는 사람이 약탈을 당합니다.” 여호와께서 보셨다. 그런데 공의가 없음을 보시고는 슬퍼하셨다.(15절)
셋째, 성실이 없어지니까 악하게 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피해를 봅니다. 성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피해를 봅니다.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구원의 시작 이 메시지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책망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인정했고 죄의 원인을 고백했습니다. 사실 오늘 설교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허물을 인정하고 고백을 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인간의 구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너무 슬퍼하셨습니다. 고통스러워하셨고,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에 개입하십니다.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어안이 벙벙하셨다. 중재하는 사람이 없으니 기가 막혀 하셨다. 그래서 주께서 손수 그분의 팔로 구원하셨고 그분의 정의에만 의지하셨다.”(16절)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저주가 임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가슴이 아팠고, 슬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중재자를 찾으셨는데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인간이 절망과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어안이 벙벙했다’, ‘기가 막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중재자, 구원자가 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주께서 정의를 갑옷으로 입으시고 구원을 투구 삼아 머리에 쓰셨다. 앙갚음을 속옷으로 입으시고 열정을 겉옷으로 두르셨다. 그들의 소행대로 갚으시고 적들에게 진노하시며 원수들에게 앙갚음하신다. 섬들에게도 보복하신다. 해 지는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해 뜨는 곳에서 그분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분이 봇물 터지듯 오실 것이다. 여호와의 바람에 밀려 몰아치는 강물 같다.”(17~19절)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보고만 계실 수가 없어서 일어나서 팔을 걷어붙이시고 스스로 인간의 구원자, 중보자,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하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시온에 오신 구원자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정의를 갑옷으로 입으시고, 구원을 투구 삼아 머리에 쓰시고, 앙갚음을 속옷으로 입으시고, 열정을 겉옷으로 두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용맹스러운 모습, 능력 있는 모습, 확연한 결의에 찬 모습, 금방 뛰어나올 것 같은 하나님의 생생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보복하고 앙갚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반드시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소행대로 갚으시고 적들에게 진노하시며 원수들에게 앙갚음하시고 모든 섬과 열방들을 공격하겠다.”고 하십니다. 19절에는 “해 지는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해 뜨는 곳에서 그분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분이 봇물 터지듯 오실 것이다. 여호와의 바람에 밀려 몰아치는 강물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봇물 터지듯이 급히 주저하지 않고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졸졸졸 흐르는 물이 아니라 쏟아지는 물처럼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제 승리의 개선가가 불리며 구원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옵니다. 그분이 구원자로 시온에 오시고 야곱 가운데 자기 죄를 뉘우치는 사람에게 오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가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은 이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 위에 있는 내 영과 내가 네 입에 담은 내 말은 지금부터 영원히 네 입과 네 자손의 입과 네 자손의 자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20~21절)
여기서 시온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시온의 회복은 하나님의 회복과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구원을 베풀어주고 축복하신다는 뜻으로 ‘오신다’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셨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희생이요, 헌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한다고 하는데 우리의 헌신을 어떻게 하나님의 헌신과 비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포기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빌립보서 말씀입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빌 2:6~7) 이 분이 예수님입니다.
허다한 죄를 덮은 사랑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을 버리지 않으시고 영광스런 모습으로 찾아오십니다. 20절을 보면 ‘그분이 구원자로 시온에 오신다’고 했고 ‘야곱 가운데 회개한 자에게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언이고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정리할수 있습니다. ‘회개하면 회복과 축복이 온다.’ ‘하나님은 시온을 잊지 않으시고 야곱의 자손을 잊지 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손해를 봐도 바뀌지 않습니다. 불리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약입니다. 21절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이 있다”고 선포하십니다. 언약은 불리해도, 잘못돼도 이루어집니다.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언약을 파괴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은 반드시 꼭 지키십니다. 내가 좀 실수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 실수와 내 허물이 하나님의 신실함을 가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네 위에 있는 내 영과 내가 네 입에 담은 내 말은 지금부터 영원히 네 입과 네 자손의 입과 네 자손의 자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21절) 우리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식도 구원받을 것입니다. 대대로 이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 민족 가운데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민족을 축복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포기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신실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계속 변덕을 부리고 배신을 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기도합시다
신실하신 주님, 약속을 지키시는 주님
승리의 면류관을 주시고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성도에게 들어와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