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행복의 조건

새벽지기1 2019. 1. 31. 07:43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지난 1년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예배를 드리기 바랍니다.  


40일 새벽기도회로 ‘행복’ 


개인적으로 올해는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일 먼저 기억나는 것은 금년을 시작하면서 40일 동안 새벽기도를 여러분과 함께 한 일입니다. 40일을 다 참여하신 분에게는 성경책을 선물로 드렸는데 모두 8,000권이 나갔습니다. 위성으로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서 같은 시간에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장관이요 감동적이었습니다. 특별새벽부흥집회를 하면서 제일 놀란 사람은 제 자신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그만큼 영적인 열정이 있는 줄 몰랐었습니다. 특별히 두 번의 체조경기장 집회 중 마지막은 28,000명 정도 모였습니다. 밤 1시부터 모이기 시작해서 3시, 4시에 꽉 찼는데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집회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집회를 통해 수많은 기적과 간증들이 있었습니다. 온누리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40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러브소타나’(Love Sonata) 때문입니다. 일본을 품으시는 하나님, 일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준비 기도를 시키신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러브소나타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처음에 러브소나타도 오키나와에서 삿포로까지 황홀하고 아름다운 집회가 될 줄 몰랐습니다. 오키나와에서부터 비행기를 전세로 빌려서 온누리 성도들 500~600여 명이 갔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라준석 목사님께서 성도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성도들이 비전을 머리로만 이해하다가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답니다. 올해 온누리교회 6,000~7,000명의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갔는데 이들이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고 봉사하면서 가슴으로 비전을 이해했다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특히 제가 기뻤던 것은 이른바 ‘올드 멤버’에게는 대개 감동이 없기 마련인데, 이번 러브소나타를 하면서 온누리 올드 멤버가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다시 한 번 새로워지고 은혜를 받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브소나타의 축복 


저는 일본에서 7개월째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 살 생각이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일본에 갈 줄도 몰랐습니다. 제 건강이나 상황을 보면 러브소나타나 40일 특별새벽부흥집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치 파도를 타는 것처럼 저를 끌고 가셨습니다. 파도에 휩쓸리면 죽습니다. 그러나 파도를 타면 멋지고 신납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때는 인생이 고난과 병 앞에 찌들기도 하지만 고난과 병을 즐기기 시작하면 멋진 일이 시작됩니다. 러브소나타라는 문화전도집회를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운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엊그제 온누리리더십축제에서 일본을 위한 포럼을 했었는데 일본 분들이 러브소나타를 두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태풍’과 ‘지진’입니다. 땅이 흔들리면 누구나 흔들립니다. 일본교회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두 축복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올해에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집회가 참 많았습니다. 제가 10년 만에 제주도에 갔었습니다. 서귀포에서 집회를 했는데 5,000명이 모였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문경에서도 집회를 했습니다. 시장님을 비롯해서 많은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4월에는 성령축제, 10월에 WOGA, 11월에 리더십축제를 했습니다. 특히 어제 끝난 리더십축제에는 멕시코에서 50여 명, 일본에서 80여 명, 대만에서 130여 명이 오셨습니다. 이번 리더십축제는 예전과 달리 국제적인 집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중남미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지구는 하나다. 하나님은 지구를 사랑하신다’는 큰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랑에 취해 보낸 한 해  


이렇게 숨 가쁘게 달려온 1년이었습니다. 저의 연약한 건강과 체력을 생각하면 꿈만 같고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저는 감사드리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 투석 주치의가 일본분이신데 얼마전 제가 일본에서 설교할 때 오셨습니다. 이분이 저를 관찰하시더니 “목사님은 설교할 때는 청년 같은데 나올 때는 노인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체력이 이렇게 약합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 붙드셔서 상상할 수 없는 집회를 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또 하나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온누리교회 성도들의 순종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일본에 가자고 한들 다 가시겠습니까? 그러나 5,000명이 갔습니다. 순종이 아니면, 헌신이 아니면 못할 일입니다. 저는 온누리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한사람도 빠지지 않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저만 보면 손잡고 “목사님 건강하세요”라고 가슴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주님, 제가 무엇이관데 성도들의 이런 사랑을 받습니까’하는 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저는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건강도 체력도 잃었지만 요즘처럼 행복하고 보람 있고 의미 있는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금년 한 해는 사랑에 취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취했고 온누리교회 성도들의 사랑에 취해서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지난 1년 동안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어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각자에게도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그것을 생각해보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저는 오늘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말씀을 가지고 행복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행복의 조건은 첫째는 기쁨이고 둘째는 기도이고 셋째는 감사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18)


행복의 조건


첫째, 기쁨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은 기쁨입니다. 기뻐하는 모습, 환하게 웃는 모습, 감동과 감격의 모습, 이것은 분명 행복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외롭지 않았습니다. 근심 걱정으로 찌든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보면 마치 돌부처 같습니다. 표정이 없이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근심 걱정이 너무 많은 얼굴입니다. 그 얼굴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의 얼굴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의 얼굴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환한 얼굴,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 승리에 가득 찬 얼굴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쫓기는 모습, 불안한 모습, 근심 걱정이 가득 찬 모습, 절망하는 모습, 분노하는 모습, 미워하는 모습은 떠날지어다! 저는 여러분에게서 이 모습들이 다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거울을 보며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얼굴이 있다니’하고 놀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근심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주름살도 근심 걱정을 하는 모습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 것은 잘 펴지지도 않습니다. 오늘 그런 주름살이 기쁨의 주름살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항상 기뻐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권면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기쁘지 않아도, 기뻐할 이유가 없어도,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기뻐하기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뻐할 이유가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인은 기뻐할만한 상황에서만 기뻐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기뻐할 상황이 아니라도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이 한 분 계십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냉기가 돌고 햇빛이 들지 않는 감옥에서도 기뻐했습니다. 돌에 맞아도 기뻐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온 세상에 기쁨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기쁘기를 바랍니다. 우리 민족이 기뻐하는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웃음꽃이 피는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은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를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당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시 37:4) 조건이나 상황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을 생각하면 기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생각해도 기뻐할 수 없습니다. 조건을 봐도, 나를 봐도 기뻐할 수 없습니다. 기뻐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십시오. 나를 보면 기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보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기뻐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내가 죽더라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분이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보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쁨이 가능합니다. 행복이 가능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을 보고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을 보고 기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보고 실망하지 말고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둘째 조건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생명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유일한 대화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숨을 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호흡할 때 산소는 받아들이고 탄산가스를 내보내듯이 기도할 때 영혼의 생기는 받아들이고 영혼의 악취를 내 보냅니다. 또한 기도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기도하면 미래가 보이고 꿈이 생깁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옵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기도하면 불가능한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사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도하게 되어있습니다. 누구나 급하면 기도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기도합니다. 급하면 새벽기도회에 옵니다. 위기에 부딪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기도합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지 않아도 급하면 누구나 기도합니다. 기도할만한 때에 기도하는 것은 자연인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성령받은 사람이 의지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자연인이 본능적으로 위기나 어려움 앞에서 기도하는 것과 다릅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네가 어렵고 힘드니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지적으로 결단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기도는 인격적 대화입니다. 기도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기도는 찬양의 예배입니다. 기도는 성령의 감동입니다. 기도는 회개의 고백입니다. 기도는 의지의 결단입니다. “내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스러운 일들을 네게 알려줄 것이다.”(렘 33: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필요할 때, 위기 때, 본능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기도를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약속의 기도, 쉬지 않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은 성령 받은 사람, 거듭난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기보다 ‘나’라는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셋째 행복의 조건, 감사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감사의 차이입니다. 짐승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과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나를 창조하신 그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여기에도 자연인과 거듭난 사람의 감사가 있습니다. 자연인은 감사의 조건이 있을 때만 감사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 성령 받은 사람은 모든 일에 다 감사합니다. 죽어도 감사하고 살아도 감사하고, 병들어도 감사하고 건강해도 감사하고, 사업이 잘돼도 감사하고 못돼도 감사합니다. 제가 어제 설교를 할 때 쓰러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배에 힘을 줬던지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나오면서 차 안에서 ‘하나님 배 아픈 것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하기가 참 쉬웠습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감사로 바꾸십시오. 투석한 것 감사하고 배 아픈 것 감사하십시오. 할렐루야! 우리는 슬플 것이 없습니다. 힘들 것이 없습니다. 누가 나를 괴롭히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다 감사합니다’라고 하십시오. 어느 날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그렇게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는 찬양이요 예배입니다. 성경에 보니 감사는 십일조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문둥병에 걸린 사람 열 명이 예수님께 사정을 해서 병이 다 나았습니다. 그런데 병 고침을 받고 감사하러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홉은 어디 갔느냐”라고 찾으셨습니다. 이것은 “왜 아홉은 감사를 하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홉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 감사한 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136편을 보면 모든 절이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를 골라서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것에 다 감사하십시오. 숨 쉬는 것, 살아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십시오. 모든 비참함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바꾸십시오. 이것이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이제 금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한 사람이 되십시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모든 슬픔, 절망, 비극을 축복과 행복으로 바꾸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사랑하는 성도중에 불행한 사람이 없게 하시고

절망하는 사람이 없게 하시고

슬픈 사람이 없게 하옵소서.

이 시간 다 바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좋은 말씀 > 하용조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온의 영광이 빛을 발하리라  (0) 2019.02.06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다  (0) 2019.02.02
둘이 하나되다  (0) 2019.01.28
하나님의 은혜  (0) 2019.01.21
감사와 기도  (0) 2019.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