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능력 (2월 17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고린도후서 13:4)
십자가의 능력을 말할 때 죄 사함에 대해서만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 어떠한 죄라도 다 용서하시고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신학적으로 보면 소위 “전가(imputation)”에 대하여 말한다. 나의 죄는 예수님께로 넘어가고 예수님의 완전한 의가 내게로 넘어온다. 이때 이 사건은 우주의 최고 법정에서 내리는 칭의(justification)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십자가의 능력이 다 표현된 것이 아니다. 단지 십자가의 법적 능력만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십자가의 능력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하려면 “부여(impartation)”에 대하여 추가해서 말해야 한다. 곧, 칭의뿐만 아니라 거룩한 생명력을 말해야 한다. 거룩이란 금욕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성이 짙은 것을 거룩이라고 하지 않는다. 거룩이란 내 안에서 계신 거룩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사시는 것이다. 물론 나를 죽이고 예수님께서 나를 주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꾸준한 거룩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를 소위 성화라고 한다. 필자는 현대 이 땅의 교회에서 성화의 개념을 잘못 가르치며 성화를 인간의 노력으로 오해함에 아주 못마땅하다. 이러한 경우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다른 복음의 요소가 들어오는 것과 같다.
복음의 능력은 머리로 교리를 알고 있다고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이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마귀들도 이 자리까지 갈 수 있다. 많은 신자들이 머리로 성경을 알지만 그들의 삶에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칭의를 너무나 잘 알기에 은혜를 빙자하여 죄의 늪으로 빠지는 것을 합리화하는 자들도 있다.
또한 십자가의 능력은 종교적인 예식을 치루며 교회 봉사에 힘쓰고 모든 모임에 참여한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십자가의 능력을 접할 수 있는 유익을 얻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반대로 십자가의 능력과는 거리가 먼 종교적인 열심으로 빠질 위험도 있다. 많은 모임과 부흥회와 기도 모임을 가져도 가정과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십자가의 능력은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을 말한다. 요약하면, 주님을 통하여 진리를 알며, 주님을 통하여 진리대로 사는 것이다. 사고(Thinking)와 삶(Living)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난다. 즉, 믿음의 삶에는 법적인 효력과 영적인 능력이 다 나타난다.
[출처] 2월 17일 십자가의 능력|작성자 스데반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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