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3:1-12)
▶본문
1.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해석과 설명
◦“세례 요한(1절)”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계속된 약400년 간의 침묵을 깨뜨리고 등장한 세례요한의 사역은 신구약 제사의 분기점이 된다.
즉 율법에 규정된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속죄 받는 구약시대를 마감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신약시대의 막을 열게 된 것이다.
특히, 세례 요한은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은 더욱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눅1:5).
◦“회개하라”(2절)
헬, ‘메타노에오’는 ‘메타(달리)’와 ‘노에오(생각하는 것’의 합성어로 ‘생각을 고치라’라는 뜻이다.
이는 곧 시작될 메시야의 사역과 더불어 시작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선민사상만 가지고 교만하여져서 하나님 뜻은 행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잘 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3절)
이는 이사야40:3절의 예언 성취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유대 땅으로 돌아올 때(BC536년)
그의 백성들과 함께 돌아오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 이이었다.
마태는 이것을 세례 요한에게 적용시켜 그를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소리’는 요한의 말이 아니라 요한은 그저 스피커라는 의미다.
요한이 전한 것은 요한의 의지가 아니라, 메시야의 뜻과 의지를 전한 것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2절)
세례 요한이 전한 두 번째 메시지믄 천국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유대인들이 회개해야 할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구원론적 측면에서 ‘회개하라!’와
종말론적 측면에서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메시야의 나라에 자동적으로 들어가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으려면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선지자들이 제시한 요구들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 있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천국’은 헬라어로 ‘헤 바실래이아 우라논’는 4복음서 가운데 오직 본서에만 나오는 독트한 표현으로,
다른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헬라어 ‘테 바실레이아 투 데우’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모두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이다.
천국이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요한이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박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요한의 천상에서의 하나님의 통치가 이제 지상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메시야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것이며,
요한 자신은 그 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것이다.
<참고>천국
신약시대의 천국개념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가 사건으로 이 땅에서 구체화된 천국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 될 영원한 천국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 나타난 천국은 전자를 의미한다.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3절하)
이 말은 ‘회개하라’의 은유적 표현이다.
개역성경은 ‘그의 첩경(지름 길)을 평탄케 하라!’고 했다.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9절)
첫째 견해-그냥 길바닥에 있는 ‘돌’이다.(칼빈)
말 그대로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둘째 견해-유대인들을 제외한 ’이방인들‘이다.(크리소스톰)
구속사적으로 이방인 가운데 믿는 자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갈3:7)”
하지만 둘 다 적용이 가능하다.
‘돌들’과 ‘자손’은 모두 히브리어로 동음이의어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풍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는 몇가지 상징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돌 같은 마음도 혈통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과,
하나는 구원(복음)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2)”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10절)
이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도끼가 ‘뿌리’에 놓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하고 완전할 것을 의미한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12절)”
여기서 ‘알곡’은 ‘의인’을, ‘쭉정이’는 ‘악한 자’를 상징하며, ‘타작 마당’은 ‘세상’을, ‘키를 손에 든 자’는 메시야를 상징한다.마지막 때에는 철저하게 의인과 악인을 분리 될 것을 보여주신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25:32-33)“
▶교훈과 적용
◦“독사의 자식들아”(7절)
세례 요한의 이 말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외식과 신앙 모습에 대한 책망이었다.
마12:34, 23:33에서 예수께서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이와 동일한 표현을 하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12:34)”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의 양대 주류다.
그들은 스스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여겼지만,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그들을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 하게 한
사단의 도구인 뱀의 후예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13:2)”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눅22:3)”
사두개인과 바리새인과 가룟유다가 사탄이 아니다.
누구든지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의의 병기로 드릴 것이냐?
내 자신이 사단의 도구가 될 것이냐?
성도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8절)
여기서 ‘합당한’이란 헬라어 ‘악사오스’라는 말로 ‘같은 분량’이란 뜻이며,
‘열매’는 ‘행위’를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다.
이는 참된 회개에 따른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라는 촉구다.
그러면 ‘합당한 열매’란 무엇일까?
로마서12:1절을 보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영적 예배란? 헬라어로 ‘로기켄 라트레이야’인데 ‘로기켄’는 ‘올바른’의 뜻이며,
‘라트레이야’는 ‘예배’ 즉, 영적 예배란 ‘올바른 예배’ 또는 ‘합당한 예배’라는 뜻이다.
이를 적용해 보면 합당한 열매란 ‘영적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육적 열매’와 ‘영적 열매’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19-20)“
그러나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아멘!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성령의 열매’를 말한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맺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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