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닌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시 92:14-1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우리는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께 붙어있는 가지이다.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기 위해 존재한다. 포도나무는 관상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재로도 사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포도나무의 존재가치이다. 그래서 포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농부가 잘라 버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 불에 던져 사르게 된다(요 15:2, 6). 열매가 없는 것은 자체가 무서운 심판이다.
포도 열매는 줄기가 아닌 가지에서 맺는다. 열매를 맺는 것은 가지된 우리들의 본분인 셈이다. 우리는 열매를 맺기 위하여 이 땅에 존재한다. 그래서 열매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성적표이다. 그리고 열매는 우리들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증표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열매는 개인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열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열매이다. 내면적 열매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들 수 있다(갈 5:22-23). 또 다른 것은 겉으로 보이게 드러나는 열매이다. 전자가 생명의 내적 변화와 성숙이라며, 후자는 그런 내적 생명력이 구체적으로 표출된 결과이다. 이 두 가지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실체에 대한 두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마 3:8)라는 표현이다. ‘회개’라는 내적 변화가 보이는 ‘열매’로 드러나야 온전한 회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열매는 포도나무의 마지막 과정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다. 그만큼 우리들은 모든 노력을 열매 맺는 것에 집중시켜야 한다. 열매는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열매를 맺는 절대적 조건이요 유일한 비결이다. 자신이 스스로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열매는 하나님 앞에 통할 수 없는 가짜이거나 착각이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지가 줄기에 제대로 붙어있는가를 늘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리라”(요 15:2)이다.
열매를 맺는 것이 마지막 과정이라는 것은 열매 맺는 삶이 마지막까지 지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중간에 열매를 많이 맺다가도 생애의 뒷부분에 가서 열매가 없는 경우가 많이 있 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실패한 인생의 성적표이다. 마지막 최종 평가는 예외 없이 마지막 결승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포도나무 가지로서 우리는 마지막까지 열매를 맺는 일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포도나무라면, 열매 맺는 것은 누구에게든지 열려있고 가능하다. 열매는 성장의 결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매를 맺으려면 날마다 새롭게 성장해야 한다. 비록 겉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차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젊어지는 것이 신앙의 매력이다(고후 4:16). 그래서 신앙으로 살아가는 의인들은 종려나무처럼 번성하고,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다(시 92:12, 14).
풍성한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기 위하여 우리들은 날마다 새로워짐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매일 매일의 말씀 묵상과 기도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의 기본이며 필수조건이다. 사회적 제도에 따라 직업의 은퇴는 피할 수 없겠지만, 신앙의 은퇴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지속되어야 할 우리들의 영원한 사명이다.
[출처] 마지막까지 지속되어야 할 신앙의 열매|작성자 viva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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