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 28:20-22)
야곱의 벧엘 경험과 관련된 세 번째 돌은 그의 서원기도 속에 나오는 비전의 돌이다. 야곱은 자신의 영적 변화를 근거로 새로운 삶의 결단하는 서원기도 형식으로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그 기도 속에서 야곱은 기둥으로 세운 '맛체바' 돌이 장차 세워질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이 되게 하겠다고 서원하였다.
야곱의 기도는 하나님과 타협하는 조건적인 것처럼 보인다.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주시는 조건으로 하나님을 믿겠다는 자세처럼 보인다. 그러나 야곱이 제시한 조건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그에게 약속하신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야곱의 제시는 전제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신앙고백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것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인 셈이다.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야 한다. 우리들의 생각이나 필요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선적이다. 그것이 '기도는 듣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약속을 바탕으로 자신의 결단을 세웠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 것이다.
야곱의 결단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첫째는, 여호와께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고백이다.
여기에서 여호와로 ‘나의 하나님’이 되게 하겠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야곱과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의 향후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고백이었다.
(2) 둘째는,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되게 하겠다는 결단이다.
야곱의 성전건축 비전은 솔로몬 시대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순수한 비전은 우리가 구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요셉의 꿈과 같이 하나님께서 직접 주셔야 한다. 마찬가지로 비전의 성취도 하나님 손에 맡겨져야 한다. 그래야 비전의 순수성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다. 비전을 주시는 분도 그리고 그 비전을 이루시는 분도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자신이 비전 구상이나 비전 성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면, 비전은 순수성을 잃은 채 개인의 욕심으로 전락할 수 있다.
(3) 마지막으로,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 곧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약속이다.
여기에서 야곱의 십일조 결단은 앞에서 언급한 ‘나의 하나님이 되심‘이나 성전건축 비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하나님의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 건축이 필요했고, 그 성전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비용인 십일조를 드려야 했다. 그런 점에서 야곱의 기도 내용 세 가지는 결국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모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하드웨어(성전)와 소프트웨어(십일조)를 마련하겠다는 서원인 셈이다.
야곱의 벧엘 경험은 실패의 절망 속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신앙적 가능성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주시는 영적 원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무리 어두운 절망을 경험하고 있다하더라고, 그것은 얼마든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본질적으로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벗어난 인간은 야곱처럼 절망을 베개 삼고 사는 자들이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희망의 출발점이다. 절망의 누워있던 돌베개는 바로 세워져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통로 ‘맛체바’로 바뀐다. 땅을 향하던 삶의 방향은 하나님께로 정립되고, 방황하며 도망다니는 처량한 신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순례자의 길을 걷게 된다.
야곱이 영적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하여도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보이는 상황은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오히려 그동안 고이 소중하게 간직하였던 감람유는 모두 부어버려 없어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야곱은 마치 온 천하를 얻은 것같은 확신과 감격으로 미래의 비전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지상 거처인 성전을 마련하겠다는 비전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계로 퍼져 나가는 구심점이다. 그런 점에서 야곱이 제시한 미래 비전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질 것을 열망하는 우리의 비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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