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악인들의 형통과 종말 (시 73:1-9)

새벽지기1 2017. 12. 14. 06:21

 

시 73편은, 악인의 형통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 시를 쓴 아삽은 ‘하나님이 참으로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그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그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다.’

그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서는 그 오만한 자를 시기하여 미워(질투)했기’ 때문이다.

 

그는 악인의 형통만 본 것 같다. 심판과 재앙을 받아 망하는 악인도 많은데요.

마음 속에 불만이 싹트고 원망이 가득해지면,

상대의 부러운 면만을 극단적으로 부각시키며 나의 억울함을 생각하기 쉽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했다.’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악인들이니까, 고난과 재앙이 쏟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악인들의 교만은 하늘을 찌르고 땅을 덮었다.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악인들은 형통하면 그것이 영원할 줄 알고, 목걸이처럼 교만을 걸고 다니고,

그들이 옷처럼 입는 것은 강포(우악스러움과 사납고 악한 언행들)이다.

완장 찬 사람들처럼 편향된 심판의 막대기를 마구 흔들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지요.

 

먹을 것 안 먹을 것 다 주워 챙기니 그들의 소득이 마음의 소원보다 더 많아진다.

뇌물을 주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면, 악인들이 그곳으로 몰려드니 그렇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의식은, ‘남이야 나라야 어떻든, 나만 우선 잘 되면 된다’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권력과 부를 믿고, 사람들을 능욕(업신여겨 욕보임)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횡횡하지 않고 있지는 않는가?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이제 그들의 입은 하늘까지 찌른다.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내 가진 것이 커 보이니 하늘도 작아 보인다.

내 지식, 내 생각이 최고라고 생각하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나보다 더 알 수 있으랴 한다.

(눅10: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그들의 혀는 땅을 두루 다닌다.

온 세상이 그들의 혀로 지배를 하고 그들이 하는 말에 세상이 다 놀아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백성들조차도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찬 그들의 물을 다 마신다’고 한다.

 

이들을 보면서, 이 시를 쓴 아삽의 ‘넘어질 뻔한’, ‘미끄러질 뻔한’ 장탄식이 흘러나온다.

(시73:12-14)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려움과 고통과 슬픔이 닥치면, 환경이 풀리지를 않고 고난이 장기화되면,

이런 생각을 하고 실제로 입으로 이런 원망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삽처럼 생각으로만 넘어질 뻔하고, 미끄러질 뻔하다 말아야지, 확신으로 발전시키지 말라.

이런 생각들이 오면, 단호하게 끊어버리시기 바란다.

한번 원망, 불평의 생각이 오면, 그것은 계속 날개를 달고 풍선처럼 부풀어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딤전1)처럼, 있던 믿음은 파선을 하고, 착한 양심은 버리게 된다.

 

아삽은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생각을 했으나

그것을 자제하고서는 말하지는 않았다. (욥처럼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한 번 말을 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라고 한다.

그 이유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생각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처음 생각했을 때의 잘못을 두 번째 생각에서 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을 깨끗이 한 것이 헛되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는 것은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전체적으로 실족케 하는 것이다(궤휼을 행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미련하여...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잠 30:32).

 

오늘 우리가 아삽의 시편을 통하여 가져야 할 믿음의 대원칙이 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는 것이다,

내 마음을 깨끗이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게 한 것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이다.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진리를 언제 어디서 깨닫게 되는가?

(시73:16-17)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하나님의 성소, 교회와 멀어지면, 악인의 종말을 깨달을 수가 없다.

교회에 와야 왜 악인의 종말을 깨달을 수 있는가?

진리가 선포되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참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참된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워져 있다.

(딤전3:15)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교회라 하면서, 세상 지혜와 철학과 속임수를 섞어서, 순전한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고, 사단의 놀이터요, 악인들이 바벨탑을 쌓는 곳이 되고 만다.

우리는 악인들의 종말을 교회에서 진리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

(시73:18-19)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악인들이 항상 평안하고 재물이 더욱 불어나는 것 같아도,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두신 곳은 미끄러운 곳이어서, 곧 미끌어져 파멸에 던지신다.

그들이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하고 놀랍도록 그들은 전멸하고 만다.

 

그들의 번영은 잠시였고, 그들의 전멸과 파멸은 졸지에 닥쳐 영원한 것이었다.

풀이 베이듯이 베어지고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등불이 꺼지듯 없어지고 만다.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에서 악인들의 최후를 알고 고난으로 인해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란다.

끝이 좋으면 영원히 좋은 것이고, 끝이 나쁘면 영원히 나쁜 것이다.

그러므로 악인들의 번영은 부러워할 것이 못되고 오히려 경멸해야 하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하시리이다.

갈대아 역본에는 '심판 날에 저희가 수치와 영원한 멸시를 당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육체의 안전 속에 잠자는 그들을 깨우시고 그들의 형상을 경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자의 형상을 어떻게 멸하셨는지 보라.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눅 12:19,20).

 

우리도 악인의 형통과 나의 고난으로 인해 마음이 산란하였다면 아삽의 고백을 드리자.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아삽은 그가 겪었던 극심한 시험을 잘 극복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확신으로 세워진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를 나무랄 수 있게 되었다.

짐승들의 특징은 현재의 일에만 관심을 쏟을 뿐, 다가올 일은 결코 보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나도 짐승처럼 현재의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우매 무지하였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나와 항상 함께 하시고 내 오른손을 붙들어 주셨음을 감사한다.

 

그가 성소에서 깨달은 진리를 그는 말한다.

(시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은 것은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모든 고난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교훈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주 안에 돌아와서도 세상의 떡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매달린다.

이 미련과 매달림을 끊어버리는 하나님의 방법이 바로 극심한 고난의 훈련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은 가시(재물의 유혹과 세상 염려)때문이라 하셨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세월을 보내면서도 이 가시와 떡의 미련을 못버리고 멸망하고 말았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2세들도 결국은 이 떡과 가시에 찔려 약속된 복을 잃고 말았다.

 

주의 교훈으로 사는 훈련 후에, 인내와 연단 후에, 하나님은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신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고난과 환난은 잠시이고 가벼운 것이고,

우리가 받을 영광은 크고 영원하고 중한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광을 받기 위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다.

 

이를 약속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우리 신앙고백이 확실하고 고난 중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성소에서 진리를 깨달은 아삽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악인들의 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그 영혼을 행복하게 하실 수 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주로 선택하고 섬겨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그 외의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악인들의 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재물과 일과 사람들도 내가 사모할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육체는 병과 늙음과 죽음으로 쇠잔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내 몫)이 되셔서 우리 영혼을 강건케 해주신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그는 모든 악한 백성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성소에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것을 항상 마음에 간직한다.

전능자에게서 떠나기를 바라며, 그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은 반드시 멸망을 당하게 된다.

 

이제 그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신뢰하기로 스스로 다짐한다. 우리의 믿음과 다짐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146:3-5)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