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순종과 자기 부인속에서의 믿음의 인내

새벽지기1 2017. 12. 5. 13:36


유학을 떠나기 전 한국에 있었을 때 코딱지가 늘 생겨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것을 떼다보니 코피가 난 적도 있었다.

미국에거할 때에도 건조하면 생기는 코딱지로 인해 겨울과 봄이 참 싫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왔을 때 공부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는데

의자가 좋지 않았는지 양다리가 철로 된 의자에 실려서 피부염이 생긴 적 있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병원을 찾는 습관이 없었는 지라 그저 건강치 못해 생기는 것이라 여겼다.

건강하면 괜찮아!


하지만 간단하게 항생제를 비롯한 약 처방을 받자 씻은 듯이 없어지는 것을 사서 고생했다고 여겨진다.

물론 봄만 되면 알러지로 고생하지만 처방 방법을 알기 때문에 이전처럼 고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에 무지하게 참고 견뎠던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건강하면 잔병은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육체적 건강에 힘을 쏟았기에 이처럼 큰 무리 없이 건강했으니 말이다. 좀 더 지혜로웠다면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니 모다 지혜롭게 몸을 보존해야겠다고 여긴다.


우리의 영적 삶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저 참고 참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답답한 자들을 주위에서 늘 보곤 한다.

자칫하면 로마 가톨릭 신앙처럼 교회가 그래도 옳은 길을 인도할 것이라는 막연한 맹신을 가질 수 있다.
끝내 본성상 그릇된 신앙생활인지 알고 고치고 바른 교회를 찾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시련과 고통 속에서 참고 견디는 것과 로마 카톨릭 맹신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순종과 자기 부인이 있지만 후자는 불평과 원망을 내뱉는다.

어떤 단체든 두 부류의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참다가 끝내 바른 것을 찾아가는 자들이 있고, 맹신하다가 견디지 못하여 뛰쳐 나오는 자들이 있다.


신앙은 인내가 언제든 요구된다.

연단이라고도 하며 훈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연단 속에 자신의 이기적 생각과 무지한 지혜를 채우며 살아간다.

참고 참다가 아예 그른 길에서 미련하게 참고 참은 것을 알아치라고 바른 지침을 위해 길을 나서는 자들이 있다.
그렇지 않고 이곳이든 저곳이든 개인의 욕망이나 가치관과 충돌을 빚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곳을 찾아 나서는 자들이 있다.

둘중에 선택하라면 전자의 삶을 택하겠다.


두 부류의 삶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신앙생활은 기도이다.

전자의 기도는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소망하고 바른 길을 찾는 것이다.

후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지만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다.

전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 차 있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으로 참고 견딘다.

후자에게는 하나님 때문에 불행한 일을 맞이했다고 하며 바라새파처럼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이다.


참는 것만으로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

아니 구별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 스스로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별하려는 욕망을 가진다면 이미 그 사람은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다.

참된 신자는 참을 수 있는한 참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쳐다보고 고칠 수 있는한 고치면서

그분의 성품을 닮으려고 부단히 배우고 고쳐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