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 현재 양지에 있는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다녔다.
그때의 영동고속도로는 매우 한산했다.
왕복 2차선이었고, 광주 대구 고속도로처럼 중앙분리대도 없었고 노란색 중앙선만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자동차들이 없었기에 친구가 타고 다니던 티코를 질주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영동고속도로를 다니다 보면, 과거 시절을 모두 상실하고 정신없이 질주하는 것에만 관심 가지는 듯싶다.
무인자동차가 상업화 할 때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세상은 참빠르게 지나간다고 여겨진다.
인간이 만든 속도감과 신속함을 항상 위험과 대가를 치르게 한다.
산이 많고 땅이 좁은 한국에 거미줄처럼 도로망이 만들어졌으니 얼마나 신바람 나게 운전하고 다닐까?
그것도 생생! 자동차 실내는 고전음악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소음을 줄였다고 한다.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 만큼 조용하다니 음악실처럼 자동차 실내를 만들 날도 얼마 남지 않을 것 같다.
속도감과 공기의 저항을 느끼지 못하니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저항도 받고 소음도 있어야 엄청난 속도로 자신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끼고 조심하고 방심하지 않을텐테
위험한 살인 기계를 타고 질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실처럼 느끼게 만드니 방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방심하거나 방종하면 언제든 사고가 일어난다.
주위의 환경이 움직이지 않으면 인간은 착각하기에 이른다.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으면 사팔뜨기가 되고, 건강에도 좋지 않단다.
인간들은 지속적으로 알약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려고 한다.
마치 건강 식품인양 약들을 팔아먹지만 실제는 건강엔 약간의 도움을 줄 뿐
오히려 해치는 경우가 많고 방심하게 만드는 나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상의 삶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과 환난을 통해 구원의 확신에 이르게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지만 인간은 그분의 감동에 의지적으로 거부한다.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에 억지로라도 그분의 이끌림에 순종하도록
환경적으로나 정황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부자연스럽고 감춰져야만 참된 자유에 대한 감사와 부성애에 대한 찬양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적 가공물인 편안함과 안정은 세상에서 추구하려고 하지만 그만큼 하늘나라와는 멀게 만들 것이다.
잠시라도 누릴 수있으면 좋겠지만 인간은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제어장치가 고장 난 것처럼 그만두지 않고 멈추지도 않는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정취를 결콜 느낄 수 없다.
맑은 공기와 신선한 자연미를 결코 맛보지 못한다.
인생 역시 그렇고, 신앙생활 역시 자신의 비천함을 체험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고 외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소망하게 된다.
이 소망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다시금 새롭게 바라보며 함차게 살아갈 수 있다.
경건한 자는 역설적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정적이 흐르는 한 밤 중에라도
동녘에 해가 뜬다는 것을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날이 밝아올 것을 알고 있기에 현재의 고난을 기쁘게 감내할 수 있다. 언젠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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