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영어를 증진시키면서 배운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는 영어를 배우러 왔다(I came to learn English)고 자신을 소개하자
영어 선생님은 "아니야! 영어를 증진시키려고 온거야!"(No, you came to improve English)라고 하며 교정시켜줬다.
또 영어 선생님을 한 날 집까지 바래다준 적이 있었는데 그가 고마웠는지 "플리즈!(Please!)라고 하며 들어오라는 것이다. 나는 사양했다. 두 차례나 권하였지만 사양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후에 영어의 세계에서 플리즈라는 단어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뿐만 아니었다. 처음 영국 영어 학교에 이르자 나의 영어 실력 테스트를 했다.
나는 만점 받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자만이었다.
여지없이 나의 상상력은 무너지고 말았다.
언어에는 이면의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을 언어의 측면(aspect)이라고 한다.
억양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알았다.
표현력을 통해 다른 의미를 전달된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말에도 약간의 억양이 있지만 중국어나 영어에는 그억양의 차이는 대단했다.
그것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상적 은혜로 죄들을 용서받았다.
미래의 죄까지도 모두 한꺼번에 용서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기도 가운데 "용서해주세요!"라고 반복한다.
단번에 용서받을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인데 이 표현 외에는 다른 표현을 사용 하면 한 될까?
"긍휼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표현이다.
여전히 죄의 잔재들이 남아 있고, 부패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우리는 늘 죄들의 범하고 살아간다.
생각하는데서 부터 시작하여 고집을 피우고 행동한는 것까지 모두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다.
아무리 바로 살려고 하더라고 정황에 이르면 언제든 인간의 부패성을 어김없이 드러낸다.
하나님은 이미 용서하셨지만 인간 당사자 입장에서 볼 때 송구하고 죄송할 뿐 아니라 자신이 밉기도 하다.
또 고집을 피우며 살아갈 것이기에 자신이 증오스럽기도 하다.
이런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정말 인내하시는 분임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우리가 그분을 향해 말할 수 있는 표현은 "긍휼을 베푸소서!"이다.
언젠가 내려놓을 인간의 자존심!
언젠가 후회하며 보낼 인간의 허무함!
언젠가 포기할 인간의 교만함!
그렇지만 처벌이나 불행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고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의 아집!
잘라버리면 될 것을 자르지 못하고 끝까지 메고 다닌 "천로역정"의 기독교인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늘도 살아간다.
자신을 내려놓는 일은 감정적으로 매우 힘들다.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론 결코 피곤하지 않다.
기쁘고 가볍지만 부패한 감정이 우리로 하여금 내려놓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용서해달라고 표현하기보다 기도할 때만다 하나님께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표현이다.
기도할 때마다 순전하게 하나님께 간구하자!
이중적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
하나님 측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즉 그분의 속성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기도를 드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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