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이따금 꿈을 꾼다.
잠을 자기 전이나 평소에 생각했던 것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이다.
꿈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꿈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원하는 대로 이뤄져도 기분이 그렇게 달갑지 않고,
이뤄지지 않아도 기분이 즐겁지 않다.
인간의 생각이 이렇듯 하나님 보시기에 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언짢을지 생각해 본다.
이것도 잠시뿐 여전히 난 자신의 영의 불결하고 그릇된 기능에 나를 맡기고 만다.
만일 꿈을 내가 주도할 수 있다면 현실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야, 즉 세상에 속하거나 유기된 자들이야 자신들이 가진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여 성취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일반인들처럼 꿈을 이루려고 한다면 이미 세속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을 언짢게 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창세전에 작정하신 그분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다.
쉽지않기에 기도와 말씀으로 탐구해야 한다.
형식적인 기도로 그분의 심오한 계획을 알려고 하는 잔꾀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미 교만한 심정과 생각으로 가지고 있으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알려고 한다는 자체도 그릇된 자세이다.
이따금 우리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흔하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알려고 한다는 자체도 그릇된 자세이다.
이따금 우리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흔하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찬송 및 예배를 받으실 것이라고 착각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심정과 영을 살피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얼마나 겸손해야 할까?
얼마나 부드러운 심정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지도 기도와 말씀 앞에 엄청나게 겸손해야 한다.
자신을 얼마나 부인해야 하는지 참 쉽기 않을 행보이다.
하지만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기 때문에, 또 그분의 뜻을 밝히시기 때문에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심정을 유지하려고 부단히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이 순간적일 수밖에 없고 형식적인 경우가 허다하지만
지속적으로 자신을 내면을 살펴야 한다.
이런 과정 자체가 겸손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겸손치 않은 자는 이런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분의 뜻을 찾고자 추구하지도 않는다.
자신에게는 자신이 이미 주인이기 때문이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려고 하기 때문이다.
꿈을 자신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의 길 역시 그렇다.
이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이따금 꿈속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아담과 하와가 숨은 것처럼 숨고 싶은 심정이다.
꿈을 내가 보듯이 그분은 나의 심정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참고 또 참으시면서 나의 인생을 지커보고 보호하고 계신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가진 꿈에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투자한다면 어리석은 자이다.
그 노력만큼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시간과 인생을 바쳐야 한다.
작정된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바꿀 수도 없고, 행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것을 찾고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평화와 기쁨 및 위로이다.
이 기쁨으로 지상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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