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의 핵심가치 네 번째 시간으로 ‘긍휼’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사야 58장 6절,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내가 원하는 너희들이 금식하는 모습은’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너희가 금식기도하는 모습은 내 맘에 들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게는 일주일씩 굶으면서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이사야 58장 4절을 보면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먹으로 치고 다투는 모습은 진정한 금식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식기도를 하는 행위뿐 아니라 삶의 모습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덟 가지 긍휼을 베푸는 모습
금식기도의 그 핵심에는 긍휼이 있습니다. 6~7절을 보면 긍휼을 베푸는 여덟 가지 모습이 나옵니다.
첫째는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부당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법조계에 근무하는 분이 계십니까?
부당하게 형벌을 받은 사람들을 풀어주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멍에의 줄을 끌러주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사람들의 짐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압제당하는 자는 노예였습니다. 노예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 진정한 금식의 결과입니다.
넷째는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
인생의 쓸데없는 것을 멍에처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짐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다섯째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여섯째 유리하는 빈민을 내 집에 들이는 것입니다.
집이 없이 방황하는 사람에게 쉴만한 공간을 제공하라는 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이 땅에 와서 고생할 때 그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일곱째 벗은 자를 보면 입히는 것입니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는 것입니다.
여덟째는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친척을 향해 얼굴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주린 자를 먹이시고 힘든 자들의 짐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어떤 교회가 참된 교회일까요? 하나님께서 하기 원하시는 일을 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기 원하시는 일을 하는 성도가 진짜 성도입니다.
금식을 형식적으로 하지 마십시오. 3박4일 동안 굶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면 가난한 사람, 배고픈 사람, 힘든 사람에게 자기 것을 나눠주게 되어 있습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약속된 축복
그런 의미에서 참된 금식은 참된 삶과 통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예배만 드리고 돌아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치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여러분의 삶도 변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연히 긍휼사역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에 긍휼사역이 차고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그들의 배고픔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갑을 열고, 시간을 내어서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첫째,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입니다. 새벽 햇살처럼 네 인생이 빛이 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입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입은 상처들을 빨리 낫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다보면 자신의 상처는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입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네 길을 바르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긍휼을 베풀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우리의 선택을 올바르게, 우리의 말을 올바르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복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 마디 했는데도 그 말이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복입니다.
넷째,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갈 때에 내 뒤에 영광이 나타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출애굽기 14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려고 하는데,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쫓아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치자 즉시 갈라진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바람이 불어서 새벽녘에 바다가 갈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 군대 사이에 나타납니다. 홍해는 갈라지지 않았는데 애굽 군대가 다가오니까 군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여호와의 영광이 막아주었습니다.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물 댄 동산 같을 것이요
하나님의 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9~10절입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다섯 째,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입니다. 가까이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여섯 째,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네 인생이 어둠이 아니라 대낮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투명하고 암담했던 삶의 여정들을 분명하고 긍정적으로 바뀌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짐은 진 자의 짐을 같이 지기 위해 땀을 흘린 가정, 인생, 교회, 민족에게는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쏟아 부으십니다. 11절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가문이, 인생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일곱 째,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입니다. 물 댄 동산은 물이 항상 흘러서 나무잎이 파랗게 살아있는 동산입니다. 여러분의 표정이 물댄 동산같기를 축원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입니다. ‘끊어진다’는 의미의 히브리어를 달리 번역해 보면 ‘속인다’는 것입니다. 속이지 않는 샘 같은 인생을 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목이 말라서 샘에 왔는데 와 보니 물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속았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목사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구나 라고 기대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하지 않고 다른 말만 한다면 그 목사는 속이는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누구든지 와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구원의 메시지,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 십자가에 대한 메시지,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이런 메시지를 주지 않고 다른 말을 한다면 그것을 속이는 교회입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긍휼을 베풀면 영혼의 양식이 쏟아지는 교회를 만들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선교와 긍휼은 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회복과 치유가 넘치리라
여덟 째는 12절 말씀에 나옵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사람들이 가난한 자를 돕고 긍휼을 베푸는 그 사람을 ‘벽을 고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떠났던 사람들을 다시 모으는 사람, 무너진 가문을 세우는 사람으로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래 황폐화된 도시를 세우는 사람, 회복시키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벽을 고치는 교회, 병든 사회를 고치는 교회, 포기한 사회를 고치는 교회라는 말을 듣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또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길이 사라지면 상점이 사라지고, 상점이 사라지면 시장이 사라집니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길거리가 살면 상점이 살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가문을 살리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확실하게 밀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선택은 여러분이 하십시오.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으로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1985년 10월 첫째 주에 온누리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올해가 창립 20주년입니다. 처음 온누리교회를 세우면서 헌금의 삼분의 일은 선교과 긍휼을 위해 사용한다라고 결정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사회선교라는 말을 1992년부터 긍휼사역이라는 말로 바꾸어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1991년 3월에는 군포에 청소년 쉼터인 하나로를 만들게 하셔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1993년 1월에는 신림7동에서 ‘열린이웃’을 시작했습니다. 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사역을 했습니다. 1994년 8월에는 ‘예수향기회’를 시작했습니다. 효창공원 옆에서 무의탁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제공했습니다. 지금은 용산구청 요청으로 중단했는데, 교회에 그때 쓴 버스가 남아있습니다. 1995년 5월에는 번동에 장애우 지체들이 사역하는 번동코이노니아가 생겼습니다. 1996년 10월에는 남영동에 공부방이 생겼습니다. 서빙고동에는 청소년공부방이 생겼습니다.
1999년 8월에 사회복지법인 온누리복지재단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온누리복지재단이 사역을 주관해 왔고 이제는 국가와 함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2002년 4월에는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을 개관해 온누리교회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달 9월 12일에는 홍익동에 동부시립노인요양복지센터가 개관합니다. 약 350~400 침대 규모로 치매 어르신을 돕는 곳입니다. 서울시에서 그 건물을 지어줬고 교회에서 위탁경영을 합니다. 저희도 10억원을 헌금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여러분이 섬기시기 바랍니다. 내년 3월에는 용인에 온누리요양센터를 세우게 됩니다. 용인시와 경기도와 온누리교회가 출자해서 건축하고 운영하게 됩니다. 감사한 것은 국가가 교회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맡겼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일들이 교회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설교만 듣고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돕는다면 누굴 돕지 못하겠습니까? 마음으로만 선교한다면 못갈 곳이 어디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의 지갑 가운데 성령충만이 있기를 바랍니다. 시간에 임하길 바랍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명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긍휼사역에 참여하십시오
우리교회에는 참으로 많은 사역이 있습니다. 먼저 장애우 사역이 있습니다. 정신지체장애우공동체인 사랑부가 있습니다. 예수사랑부는 청년정신지체장애우입니다. 지체장애우공동체인 누리사랑부가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기보다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또한 호스피스사역이 있습니다. 임종말기, 천국에 가기 전에 그분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준비를 돕는 사역입니다.
새사람선교사역이 있습니다. 교도소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교도소 가서 찬양하고 빵을 나눠 주는게 전부였지만, 요즘은 13주간 교육을 교회에 맡기고 있습니다. 새사람회복사역입니다. 2주간 집중적으로 큐티학교, 아버지학교, 일대일양육 등을 합니다. 지난 번에는 안양교도소에서 했는데 50여 명이 마지막 날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중 어느 분의 간증을 소개하겠습니다.
“연둣빛 새 순이 무성할 즈음 받기 시작한 새사람회복학교 12주 교육이 어느 새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언제나 마음이 돌덩이를 둔 듯 무거웠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그 무겁던 돌들이 하나둘 날아감을 느끼며 모든 짐을 덜어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감복합니다. 뒤돌아보니 가장으로, 남편으로, 자녀들의 아버지로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삐뚤어진 마음이 남을 시기하고 욕하며 점점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가 죄를 지어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채 내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누나 손을 잡고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후 몇 십 년 만에 이곳에서 처음으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너무도 잘못 살아왔던 지난날이 떠오르며 알 수 없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오직 주님을 부르며 지난날을 회개하고 또 회개했습니다. 모든 잘못을 주님께 고하고 용서를 빌며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밤이면 조용한 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주님을 알고 난 뒤 제 인생은 심청이의 아버지처럼 180도 바뀌었습니다. 유행가 대신 찬송가가 튀어 나오고 궂은일도 마다 않고 솔선수범을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그동안 너무도 무책임하고 잘못했다. 용서해 다오’라는 편지도 써서 보냈습니다. 지난 날이 참으로 후회스럽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밝은 미래가 보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서 봉사했더니 그 사람의 마음에 있는 무거운 돌이 옮겨졌고, 그가 변하여 집으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자녀들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것이 긍휼사역입니다.
교회 안에는 러빙핸드가 섬깁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화장실을 치우고 사람들을 돕습니다. 주차 사역, 농어촌선교팀, 구제팀이 있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일은 구제봉사주일입니다. 구제헌금과 성미를 드리십시오. 1층 로비로 가셔서 드리십시오. 그것은 100%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합니다.
2천/1만 광장에 가면 ‘사랑의 줄잇기’ 매장이 있습니다. 물품을 기증받아 수익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습니다. 나눔장터도 있습니다. 외국인근로자 사역도 있습니다.
긍휼사역은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심정을 다 해서 애끓는 마음으로 할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밀어주십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 저는 모든 교회가 긍휼사역으로 인해 복받기를 원합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 함께 돕고 웃는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아버지의 마음을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님,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좋은 말씀 > 하용조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백성을 위로하라 (0) | 2017.12.01 |
---|---|
베드로를 격려하시는 예수님 (0) | 2017.11.29 |
제자들을 격려하시는 예수님 (0) | 2017.11.27 |
핵심가치 3 – 선교 (0) | 2017.11.25 |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 (0) | 2017.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