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가 갖고 있는 교회론의 다섯 가지 핵심 가치에서 첫 번째는 성경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해 줍니다. 인간의 삶에 뛰어난 통찰력을 주고 인간이 항상 사모하고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또 성경은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삶의 길을 찾고 지혜를 발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교회론의 다섯 가지 핵심 가치에서 두 번째로 복음(福音)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식입니다. 온누리교회는 복음 중심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복음)을 믿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그분을 통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며 성장하고 부흥합니다. 온누리교회의 20년 역사(歷史)는 사도행전의 29장을 써가는 역사(役事)로서 복음을 고백하고 증거하며 지켜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은 헬라어로 ‘유안겔리온’입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알리는 사람에게 주는 보상으로 사용된 이 단어는 승리 자체의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곧 좋은 소식을 뜻합니다. 복음은 근심과 걱정과 염려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핵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곧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이론이 아닌 인격이고, 논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본문 말씀은 복음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을까요? 13절에서 15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그 빚진 것은 바로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길 원했습니다. 로마서는 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사람이 복음을 듣기 원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으면 됩니다. 복음을 만나기 원한다면 예수님을 만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죄악과 어둠 가운데 괴로워하고 고통 하는 인생들에게 빛이 되어 주시고 삶의 의미를 주십니다. 죽을 수밖에 없고 물러설 수밖에 없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전파하기로 작정하고 예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가길 원했습니다. 바울을 사랑하던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가 로마에 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바울을 잡아 죽이려는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 1:1)고 선언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입니다. 16절 말씀을 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즉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국내 서점에 여러 종류의 성경책들이 나와 있는데, 그 중에 손바닥만한 작은 성경이 있습니다. 그 성경을 아가씨들이 많이 구입해 간다고 합니다. 손가방에 쏙 들어가니까 많이 사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항상 갖고 다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갖고 다니는 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작은 것으로 구입하진 않는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부끄러워하고 있진 않는지요?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그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있진 않는지요? 바울은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자신의 삶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제한되지 않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복음에 세 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첫째로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이 나타나는 능력이 바로 복음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이 선포되고 그 복음을 믿는 사람과 그 집안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이루십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복음
둘째로 복음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 재물, 권력, 배경, 족보에 따라 차등 적용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어떤 제한이나 경계도 두지 않습니다. 물론 국경, 인종, 남녀, 나이도 구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복음은 그 자체로 은혜입니다. 많은 죄를 지은 사람도, 살인한 사람도 복음 앞에 나오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자신이 착하고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덜 착하고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지 않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수양회에 가서 사영리로 전도해 그 친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그 친구에게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했을 때 저는 속으로 ‘쟤는 아니에요. 쟤는 나쁜 아이고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지 않아요. 쟤가 구원 받으려면 1년 동안 새벽 기도를 하라고 그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양편에 강도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었기에 사형을 언도 받아도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오른 편에 있던 강도는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고 예수님께서 그를 낙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착하고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그 강도가 미웠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그 대가로 당연히 지옥에 가는데, 구원을 받아 낙원으로 간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저도 죄를 짓고 그 친구와 십자가의 두 강도와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교지에 있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 늘그막에 병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평소에 교회에 잘 다니지도 못하고 봉사 활동도 못한 분이었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며 저는 그때 복음에 차별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중한 죄인이고 나이가 많으며 교회에서 봉사할 여력이 없더라도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른 편 강도가 자신이 죄인 됨을 알고 ‘주여, 나를 기억해 주소서’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는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구원받지 못 할 영혼은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에 제한을 두시지 않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기적과 치유를 일으키는 능력
셋째로 복음은 기적과 치유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태어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사람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고 명령했을 때,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던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며 치유의 역사를 행하십니다. 상처 받은 자들, 각종 질병으로 신음하는 자들을 치유하십니다. 우리는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레위기에 의하면, 혈루병은 부정한 질병으로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여인은 몸에서 피가 나고 냄새가 심해 12년 동안 수치를 느끼며 살았습니다. 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재산마저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자신의 혈루병이 나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여인이 몰래 뒤편으로 다가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뒤에서 몰래 만진 이유는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즉시로 혈루의 근원이 말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자신이 만졌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 8:48)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과 치유를 일으키시는 능력의 근원은 바로 사랑입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혈루병을 앓은 여인에게 ‘너는 왜 허락도 없이 나의 몸에 손을 대었느냐, 네가 말을 하면 내가 혈루병을 고쳐 주지 않을 줄로 알았느냐’라는 식으로 따지고 야단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겁을 먹은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 안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기적과 치유를 일으키는 능력은 사랑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상한 마음을 위로해 주시며 아픈 몸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하고 옷자락만 만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1
7절 말씀을 읽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의는 공의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절대로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 지나치시거나 눈감아 주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고 처벌하십니다. 또 복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복음
여기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거듭 나오는데, 양자 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믿음으로’라는 말은 ‘믿음으로부터’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며 신앙생활을 하는 초보적인 믿음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믿음을 뜻합니다. 두 번째 믿음은 방향 설정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믿음의 삶을 지향함을 뜻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보통 성화된다고 말합니다. 더욱 거룩해지고 성숙해지는 믿음을 뜻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하박국서 2장 4절 말씀을 인용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창(窓)이고 문이며 길입니다.
일평생 복음을 전했던 빌리 그레함 목사는 복음이란 구원에 관한 소식이고 단순히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복음이 좋은 소식인 까닭은 우리가 죄에 대해 용서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축복하실 뿐 아니라 사후(死後)에도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로마서 3장 23절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인간은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죄의 대가를 지불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죄의 대가를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로마서 5장 8절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아무 값없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며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그 자녀와 영원히 동행해 주십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모든 인간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인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그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허락하셨습니다.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모든 죄를 씻게 됩니다. 그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로 흰 눈같이, 양털같이 희게 깨끗이 용서함을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육신의 호흡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갈 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에 관한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아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땅 끝까지 달려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부모님, 자녀들, 친지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모두 구원을 얻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복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영생으로 바꿔 줍니다. 복음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주님을 떠난 많은 영혼들이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채 구원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속히 그들에게 달려가 구원의 복된 소식을 증거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은 그 복음,
바울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 복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 끝까지 가서 증거하기를 원하시는 그 복음,
복음 중심의 온누리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복음 중심의 성도님들이 되게 하옵소서.
복음으로 새 생명을 얻게 하시고
복음으로 기적과 치유가 일어나게 하시며
복음으로 새 생명을 얻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며 승리하는 삶을 축복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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